[강학중의 가족 이야기] 사랑과 감사를 일깨워준 이사

입력 2016-04-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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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직장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갔다가 5년 만에 분당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결혼 35년에 스무 번도 넘게 이사를 한 셈이다. 지방 발령과 유학 때문에 이사를 하기도 했지만 전셋집에 문제가 생겨서도 두어 번 집을 옮겼었다.

“결혼 후 이사를 도대체 몇 번이나 한 거냐?”며 아내는 한번 세어보자고 했지만 내가 극구 말렸다. 그 많은 이사에 도움을 준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이사를 한 뒤, 도배까지 하는 상황이 되어 더욱 힘들었다. 미리미리 준비한 날을 빼고서도 꼬박 일주일 가까이 아내는 쉬지를 못했다.

포장 이사이니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맡기고 제발 좀 편하게 이사를 하자고 당부했지만 철저한 아내는 두고 보지 못했다. 옷을 일일이 분류한 뒤 박스에 넣어 표시를 하고 깨질 물건은 미리 싸놓은 것을 보고 이삿짐센터 직원들도 놀랐다.

아내는 “이제 나이가 들어 정말 힘들다, 제발 이사 좀 그만하자”고 했지만 벌여 놓은 짐은 꼼짝없이 옮기고 정리를 해야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잠시 눈을 돌리면 냉동 음식을 아이스박스에 넣지도 않고 냉장고째 포장을 해 버리고 화병이나 옷장 모서리도 부서뜨린 뒤 슬쩍 눈가림을 하니 엉덩이를 붙일 수가 없다고 했다.

짐들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인부들은 계속 물었고 박스에 일일이 표기를 했음에도 짐들이 엉뚱한 곳에 가 있기도 했다. 역할을 분담한다고는 했지만 우왕좌왕하는 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와 아들은 호흡이 잘 맞았다.

세입자가 집을 얼마나 험하게 썼는지, 아주머니들이 청소를 다 했다고 했지만 창문이나 창틀, 하수구 등 곳곳에 쌓여 있는 먼지에 아내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사를 하다 부부가 대판 싸운 뒤 철없는 남편이 며칠을 잠적했다가 다시 나타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혼자 웃었다.

이사와 도배가 끝났다고 해도 살림이 제자리를 잡기까지 아내의 일은 계속되었다. 아들과 내가 도와준다고 했지만 주부의 손이 다시 한 번 가야 마무리가 되는 일이 대부분이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사를 하며 입맛을 잃고 몸무게도 빠진 아내를 위해 몇 번 외식을 하긴 했지만 퀭한 아내의 얼굴을 지켜보아야 하는 심정이 괴로웠다.

커튼을 새로 달고 전구를 바꾸고 액자를 달면서 조금씩 우리 집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아내에게 묻고 또 물으며 며칠을 보냈다. 밥은 전기밥솥이 하고 청소는 진공청소기가,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해 주는 걸로 아는 남자들이 많다. 하지만 가전제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주부들의 손이 앞뒤로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이사를 참 많이 다녔지만 이사 역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다 하는 게 아님을 이번에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집이야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가족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행복한 보금자리는 돈으로 살 수 없다. 크고 작은 집안 일로 극도로 피곤하고 예민해져 있을 때 서로를 따뜻하게 챙기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크게 부닥칠 수 있는 일을 피해 가는 절제와 지혜가 요구된다. 비싼 가구와 커튼, 고가의 가전제품이 아니라 사랑과 감사, 칭찬과 격려로 집안을 채워나간다면 웃음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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