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리는 신격호 시대] 지팡이 짚으며 건재 과시했지만… 롯데 거인의 씁쓸한 퇴장

입력 2016-03-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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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경영권 분쟁에 정신감정까지… 지난해 상여금 0원 공식적으로 영향력 완전 상실 의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달 3일 성년후견 신청사건 심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양재동 가정법원에 출석하고 있다.뉴시스
25일 롯데그룹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날 ‘거인(巨人)’이라는 말을 유난히 좋아해 야구단 이름도 ‘롯데 자이언츠(Giants·거인들)’로 지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그야말로 ‘거인’의 퇴장이었다.

1948년 일본에서 롯데를 세우고, 이후 롯데상사와 롯데부동사, 롯데물산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그는 한국으로 건너와 1966년 롯데알미늄을 설립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1967년 4월에는 그룹의 뿌리 롯데제과를 세워 본격적으로 한국의 롯데그룹 기틀을 만들었다. 이후 롯데리아, 롯데호텔, 롯데전자, 롯데칠성음료, 롯데건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재계 5위 기업을 일궈내 맨손 신화의 대표주자가 됐다. 그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재계 1세대 창업자 가운데 사실상 유일한 생존자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겠다”며 회사 이름을 롯데로 짓고 한국 재계 5위로 키워온 신 총괄회장의 시대가 끝났다. 그러나 화려한 퇴장은 아니다. 오히려 씁쓸하기 그지 없다.

신 총괄회장은 2011년 2월 신동빈 회장을 한국 롯데그룹 회장에 임명하면서 사실상 경영 2선으로 물러났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7개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유지하면서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몸이 성치 않을 구순의 나이에 접어든 이후 그는 아들 형제의 경영권 다툼을 지켜봐야만 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을 직접 찾으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던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7월 28일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해임됐다.

1948년 자신이 작명한 회사 롯데의 대표(1948년)를 맡은 지 67년, 일본에서 첫 사업(1945년)을 시작한 지 70년만의 퇴장이었다.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간의 경영권 분쟁에서 장남 편에 섰던 패전병의 씁쓸한 모양새나 다름없었다.

신 회장이 지난해 7월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한·일 롯데를 모두 장악한 이후에도 신 총괄회장의 한국 7개 계열사 이사직 만큼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경영 영향력과 리더십은 상실했었다. 신 총괄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으로부터 매년 7억원 이상 지급받던 상여금을 지난해에는 전혀 받지 못했다. 상여는 리더십이나 회사에 대한 기여도 등을 고려해 주는 것인만큼 공식적으로 신 총괄회장이 사내에서 경영 영향력과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1세대 기업인이었던 롯데그룹의 신격호 시대가 완전히 저물면서 신동빈 회장의 ‘한·일 롯데 원톱’시대가 열리고 있다. 신 회장은 한·일 롯데그룹을 이끌 단독 경영인으로서의 행보를 굳힐 방침이다. 신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 80개 계열사 중 8개사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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