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불 횡단보도서 우회전 사고내면 운전자 중과실… “멈출 의무 지켜야”

A씨는 2010년 8월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사거리 근처에서 우회전로를 그냥 지나치고 교차로에서 차량을 오른쪽으로 틀었다가 경찰에 단속됐다. 경찰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라고 지적했지만, A씨는 “편의상 나 있는 도로를 지나쳤다고 해서 법 위반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알고 보니 A씨는 부장검사 출신 법조인이었다.
경찰과 A씨는 서로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검찰에 송치돼 약식기소됐다. A씨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랜 기간 검찰에 몸담았던 법조인으서 자존심도 있었다. A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예상 외로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벌금 4만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 ‘벌금 4만원짜리 사건’에 선례를 남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직진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분리된 우회전 차로가 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전자는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인 우회전 차로를 따라 서행하면서 우회전해야 한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교차로에서 생긴 신호위반 사건이 대법원까지 간 사례는 또 있다. 2008년 승용차로 인천 부평구의 삼거리 도로에서 운전을 하던 B씨는 자전거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피해자는 전치 10주의 골절상을 입었고, B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B씨가 녹색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그냥 지나치다 우회전하다 사고가 났기 때문에 B씨의 ‘중과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은 모두 B씨의 신호위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로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B씨가 녹색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그냥 지나치긴 했지만, 횡단보도와 교차로가 8m정도 떨어져 있어서 신호위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교차로의 차량신호등이 적색이어도 운전자는 우회전할 수 있지만, 그 전에 보행등이 녹색이라면 횡단보도에서 우선 멈췄어야 했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다. 대법원은 “횡단보도와 교차로가 8m 떨어져 있었더라도 B씨가 횡단보도에서 멈출 의무를 지켰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과실치상 죄책을 지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