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루머가 연예인을 파괴한다
2008년 9월 8일 서울 노원구 하계동 주택가의 한 승용차 안에서 유서와 연탄 화덕, 빈 소주병과 함께 시신이 발견됐다. 예능인 정선희 남편인 연기자 안재환이었다. 이내 이상한 괴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증권가 찌라시(사설정보지)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정선희와 친한 최진실의 25억 원 사채설이 유포되기 시작했다. 사실무근의 악성루머였다. 하지만 소문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사실이 아니라는 최진실의 절규는 철저하게 묵살됐다. 그리고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7년여가 흐른 2016년 3월 17일. 송혜교, 유빈, 수빈, 강소라, 남보라 등 10여 명의 연예인 실명이 실린 연예인 스폰서와 성매매 관련 찌라시가 등장, 인터넷과 SNS를 통해 삽시간에 수많은 대중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악성루머는 사실무근의 내용을 더해가며 대량유통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예기획사들은 “찌라시의 루머는 사실이 아니며 루머로 인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입장표명을 했다. “연예인이기 전에 한 부모의 딸이자 여성이다. 사실무근의 악성루머로 인해 여성으로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여자 연예인들의 절규가 잇따른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외침과 연예인의 절규는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다. ‘소문은 항상 진실보다 강하다(Das Gerücht ist immer größer als die Wahrheit)’는 격언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악성루머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연예인에 대한 소문은 늘 있었다. 조슈아 겜슨은 ‘Claims to Fame’에서 대중은 연예인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람으로 여기고 이러한 연예인이 가진 허구의 이미지를 밝히는 것을 게임으로 즐기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험담(악성루머와 악플)게임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진실과 결론도 없는 연예인의 사생활적 정보를 가지고 험담을 하며 즐거움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대중의 연예인 루머 소비의 잔혹한 측면이다. 사실무근의 험담과 악성루머로 수많은 연예인이 고통받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악성 루머가 연예인을 죽이고 있다.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정부, 국회, 수많은 시민단체와 연예기획사, 대중매체는 연예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악성루머와 악플 유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대책 마련의 호들갑은 일회성 눈길끌기용 전시에 그쳤다. 법도 제도도 변한 게 없다. 연예인의 악성루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오히려 퇴행했다. 더 많은 대중이 아무렇지 않게 연예인의 악성루머를 수다의 즐거운(?) 안줏거리로 활용하고 있다. 더 많은 찌라시가 등장해 엄청난 악성루머를 양산하고 있다. 발달한 인터넷과 SNS는 연예인에 대한 악성루머를 더 빠르고 더 광범하게 유포하고 있다.
이렇게 순식간에 대량유통 되는 연예인의 악성루머는 사실과 진실을 압도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수많은 연예인의 사실에 대한 적시나 해명, 절규는 악성루머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연예인에 대한 악성루머는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먹게 해, 소문을 진실로 인식하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최진실 자살 같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과 세상이 무서워요. 왜 제가 사실이 아니라고, 진실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데 소문을 더 믿는 거지요. 너무 힘들어요.” 괴소문이 퍼진 뒤 만난 최진실이 한 말이다.
“무슨 말을 들었든, 나는 사람들이 날 믿어주길 바랐어. 무엇보다 날 제대로 봐주길 원했어. 그들이 짐작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 진짜 모습. 소문 따위는 흘려버리길. 내 소문을 뛰어넘어서 봐주기를” 제이 아셰르의 소설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 루머로 인한 고통을 겪은 16세 소녀, 해나가 목숨을 끊으며 한 절규다. 연예인의 성매매 소문을 언급하기 전 최진실과 해나의 말을 한 번만 떠올렸으면 한다.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