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해치가 매력적인 이유는 작고 가벼운 차체로 쏜살같이 튀어나가기 때문이다. 스포츠카처럼 매끈한 몸매는 아니어도 달리기실력은 청양고추처럼 매콤하기만 하다. 하지만 육중한 SUV조차 빠른 시대다. 모두가 상향평준화 된 성능 경쟁 속에서 핫해치의 존재감은 묽게 희석되고 말았다. 우리는 늘 목마르다. 핫해치의 펄펄 날뛰는 성능이 말이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고선 야무지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해치백이 그리웠다.
부질없는 추억팔이가 한창일 때, 푸조는 독특한 컨셉트카를 선보였다.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몬스터 핫해치다. 그때가 2015년 상하이모터쇼 현장이었다. 새파란 보디 컬러를 뒤집어 쓰고선 광택 없이 시크한 블랙 컬러로 뒤태를 마무리했다. 최고출력은 무려 500마력. 현장에서는 장황한 말보다 숫자만으로 간단히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단지 비범한 외모만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보닛 아래 500마력을 뿜어내는 엔진이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끝내 보닛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정확히 7개월 만이다. 푸조의 본국 프랑스 상트로페에서 308 R 하이브리드를 다시 만났다. 하지만 이번 재회는 좀 다르다. 단지 구경만이 아니라 컨셉트카에 몸을 싣고 서킷을 달릴 수 있었다. 비로소 진짜 500마력짜리 괴물 핫해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프랑스 남부 상트로페를 떠나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르룩에 자리한 바르 서킷(Circuit du Var). 총 길이 2천200미터의 아담한 서킷에는 푸조의 모터스포츠를 전담하는 ‘푸조 스포트’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피트에는 상하이모터쇼에서 목격했던 308 R 하이브리드가 나 홀로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컨셉트카의 등장은 그곳이 아스팔트 위라도 여전히 이채롭다. 과감한 에어덕트를 비롯해 온통 미래적인 디자인에는 절제가 없다. 펜더는 근육맨처럼 불끈 솟아올랐고, 과감한 범퍼 끝자락은 아스팔트를 스칠 정도로 낮게 깔려있다. 공기를 집어삼키는 그릴에는 ‘308 R hybrid’ 엠블럼을 훈장처럼 달았다.
“맞아! 역시 핫해치는 과하게 멋을 부려야 제 맛이다.”
그렇게 화려한 기운은 뒤쪽까지 이어졌다. 무광 블랙컬러가 전투력을 암시했고, ‘PEUGEOT’ 레터링을 써넣는 등 세밀한 디테일에도 신경을 썼다. 대면식은 그렇게 짧게 끝났다. 서킷에 입성했으니 구구절절 설명보다 되도록이면 많이 타볼 것을 권하는 푸조 스포트팀. 인테리어는 308과 다를 바 없었지만, 랠리카처럼 작은 스티어링 휠과 몸을 휘감는 가죽 버킷시트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존재다. 기어레버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작게, 그리고 여러 드라이브 모드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 차는 역시 컨셉트카 아닌가? 대시보드 아래는 이름 모를 스위치가 잔뜩 달려있고, 군데군데 어설픈 마감이 그대로다. 상하이모터쇼 때 이 차를 봤었다고 말하니, 이 차가 바로 그 차란다. 전세계 단 한 대뿐인 컨셉트카를 지금 당장 서킷에서 몰아보라고 부추긴다.
308 R 하이브리드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구성이다. 1.6리터 THP 엔진과 두 개의 전기모터 조합으로 연비가 아니라 파워에 집중한다. 이미 엔진 출력만 270마력. 고작 1천598cc 배기량으로 고압터보의 힘을 빌려 앞바퀴를 굴린다. 그리고 앞뒤로 배치된 115마력 사양의 전기모터는 뒷바퀴를 책임진다. 셋의 콤비네이션으로 최고출력이 무려 500마력에 달한다. 당연히 네 바퀴를 모두 돌려 아스팔트를 박차고 내달린다.
공차중량은 1천550킬로그램이다. 전기모터와 리튬이온 배터리까지 실었으니 몸무게가 다소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1마력당 책임지는 무게가 고작 3.1킬로그램이다. 참고로 포르쉐 911 터보 S가 1마력당 3.0킬로그램 수준이니, 308 R 하이브리드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드라이브 모드는 ZEV,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 스포츠, 론치까지 총 네 가지.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전기모터의 개입은 확실했다. 서킷에서 들어서자 요란한 배기사운드가 터진다. 잠자던 엔진이 거친 숨을 몰아 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머플러는 중간쯤에서 뚝 끊겼다. 뒤쪽에 전기모터와 배터리, 연료탱크까지 빼곡하게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기사운드가 유독 거칠다.
하이브리드 모드에서 야무지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엔진이 활기차게 돌아가면 전기모터가 가속 또는 충전을 오가며 훈수를 두는 식이다. 변속은 오로지 패들시프트 명령에만 반응한다. rpm이 워낙 빠르게 치솟기 때문에 연료차단에 걸리기 전에 미리 당겨야 한다. 어느새 마지막 코너다. 저 코너를 돌아 나오면 스트레이트 직선코스가 펼쳐진다. 드라이브 모드는 ‘하이브리드 스포츠’. 작정하고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밟아버렸다. ‘뒤뚱!’ 해치백 주제에 뒷바퀴 트랙션이 걸려 움찔한다. 드디어 전기모터가 부스터를 걸어 제대로 발동이 걸린 것이다. 터보랙?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푸조의 핫해치는 머슬카처럼 트랙을 집어삼켰으니까.
도저히 우리가 알던 그 푸조가 아니었다. 무게가 늘어난 만큼 댐퍼의 압력은 더 탄탄했고, 트레드는 80밀리미터나 늘어나 코너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308 R 하이브리드의 앞뒤 무게배분은 6:4. 뒤쪽 시트 아래는 무거운 리튬이온 배터리를 비롯해 전기모터와 두 개의 변압기까지 싣고서, 기존의 연료탱크는 트렁크 아래로 위치를 다시 잡았다. 이 모두가 무게중심을 최대한 낮추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렇게 EMP2 플랫폼의 유연함에 또 한 번 놀라며 클리핑 포인트를 파고들었다. 가속페달만 밟으면 여지없이 앞바퀴가 끌어주고 뒷바퀴가 밀어댔다. 앞바퀴굴림의 지긋지긋한 언더스티어는 영원히 안녕이다.
가혹한 주행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4피스톤 브레이크 캘리퍼는 지칠 줄 몰랐고, 머플러 끝에선 파열음이 메들리로 연주됐다. 하지만 외롭게 지쳐버린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리튬이온 배터리! 하지만 다시 하이브리드 모드로, 바꾸면 충전은 마법처럼 빠르다. 단 2랩만으로 70퍼센트까지 차오르니 말이다.
308 R 하이브리드 덕분에 핫해치의 미래는 분명해졌다. 비록 프로토타입이지만, 강력한 파워와 밸런스를 매우 똑똑한 방법으로 끌어올린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배기량은 묶어두고 터보를 달아 모자란 출력을 확보하며, 터보랙과 앞바퀴굴림의 한계는 전기모터로 완벽하게 극복했다. 가속은 그 어떤 핫해치보다 우월했고, 정교한 코너링 퍼포먼스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바랬던 괴물 같은 핫해치말이다. 복잡한 메커니즘의 숙성과 합당한 인테리어 마감이 푸조 스포트의 마지막 과제가 될 것이다.
Peugeot 308 R Hybrid
Price 미정 Engine 1598cc I4
가솔린 터보차저+2전기모터, 500마력, 74.6kg·m
Transmission 6단 자동, 4WD
Performance 0→100 4.0초, 250km/h, N/A km/ℓ,
CO₂ N/A Weight 155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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