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는 지원책·코리아 디스카운트·운임 하락’ 등으로 진퇴양난
사상 최악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적 선사에게 또 한 번의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정부가 특히 국내 양대산맥인 한진해운, 현대상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의지가 없음을 내비치고 있어 두 회사는 그야말로 풍전등화 위기에 직면해 있다.
◇ '차 떼고 포 떼고..' 팔 건 없고 이자 갚기에 급급 '악순환' =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 불황으로 유동성 위기가 고조되자, 2013년 12월 고강도 자구계안을 발표했다. 이후 두 회사는 2년간 주력 계열사, 자산 등을 매각하며 자구안 이행률 100%를 초과 달성하며 재무구조 개선에 안간힘을 써왔다.
한진해운은 그 동안 비주력 사업부 및 자산 매각, 금융단 지원 등은 물론 추가 자구안 이행으로 2년 만에 당초 마련키로 했던 1조9745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2조3532억원을 확보했다. 이행률만 보면 무려 119%에 달한다.
현대그룹 역시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현대로지스틱스 등 알짜 계열사 매각은 물론 자산매각, 유상증자, 외자유치 등을 통해 지난해 12월 기준 3조5822억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확보, 109%의 이행률을 보였다. 여기에는 일본계 사모펀드인 오릭스가 현대증권 인수를 포기하면서 불발된 매각 건으로 자구안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현대상선이 추가로 추진한 현대아산, 현대엘앤알 지분 매각이 포함돼 있다. 또 현대상선 영구채 발행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두 회사는 100%가 넘는 이행률을 보였음에도 심각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채비율도 여전히 높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보다도 10%가까이 감소했으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무려 80% 이상 줄어들었다. 900%가 넘었던 부채비율은 2년 동안 687% 수준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700%에 육박한다. 현대상선은 같은 기간 매출은 상당히 늘었지만 영업적자는 폭이 커지며 흑자전환에 실패했다. 부채비율은 자구안 발표 이후 오히려 늘어 980%에 달한다.
이 같은 열악한 경영 상황의 결정적 원인은 지속되는 글로벌 해운 경기 침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벌크 시황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2년 전만해도 1000포인트를 넘어섰지만 올해 들어 300대로 떨어지며 사상 최악의 시황을 보여줬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1년 만에 반토막, 한 때 1000이 넘었던 중국발 컨테이너 운임 지수(CCFI) 역시 2년 만에 800대로 급락했다.
업계 전문가는 “낮은 운임으로 수익성이 저조하다 보니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대출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렇다보니 대출에 대한 이자 갚기에만 급급하고 실제 투자는 이뤄지고 있지 않는 등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선진국과 상반되는 정부의 '탁상공론식'지원안 =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 말 1조4000억원 규모의 선박 펀드를 조성해 해운업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부채비율 400% 이하의 조건을 충족하는 선사에만 지원하겠다고 단서 조항을 달았다. 좀 더 강해져야 할 지원 의지가 오히려 한 풀 꺾인 셈이다. 배를 사는 것은 물론 용성 비용도 천문학적인 수준인 업계 특성상 부채비율이 평균 700%~800%가 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지원책이라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나오는 상황이다.
해운 경기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부 지원은 요원한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한민국 선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며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어 우리 선사들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이는 기간산업인 해운업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선진국의 사례와 상반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세계 3위 프랑스 국적선사 CMA-CGM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산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국부펀드를 통해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했고, 중국과 일본은 각각 ‘수십조원 규모의 지원금’과 ‘제로에 가까운 대출금리’로 해운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은 배를 만드는 조선, 그와 연관된 철강은 물론 항만 등 여러 산업과 연계가 돼 있으므로 해운업이 무너지면 이들 산업 모두 타격을 입게 된다”라며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볼 때 해운업을 쉽게 포기하거나 판단하면 안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부산 신항만 하더라도 2000년 당시 세계 3위를 자랑했지만 현재는 6위로 떨어졌으며 선사가 없어지면 이들이 운영하는 터미널도 없어지게 된다”라며 “국내 수출입 물량 중 해운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99%에 달하며 이 중 한진해운, 현대상선이 처리하는 물량은 절반 이상인 점을 감안해도 해운업은 너무나 중요한 기간산업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