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아베와 박대통령에게 한겨울 소녀상은?

입력 2016-01-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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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정초부터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중동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세계 경제의 한 축을 떠맡아 온 중국의 시장 상황도 심상찮다.

새해 첫 아침, 김구 선생의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충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해방을 맞은 지 70년이 넘어가지만 한국은 여전히 식민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반면, 패전국에서 ‘보통국가’로의 변신을 조심스럽게 꾀하던 일본이 요즘에는 그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중심에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晉三)가 있다.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 전제조건 없이 솔직한 대화를 이끈 자신의 외교 전략이 주효했다며, 올 7월 참의원 선거를 통해 헌법을 뜯어고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현재는 먼 미래의 과거이며 역사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기세등등하던 정부가 왜 일본과의 협상 테이블에서는 ‘올바른 역사’ 인식이 없었는지 모를 일이다. 집권 3년 동안 기 싸움하듯 정상회담조차 거부하더니 무엇이 그리 급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했는지 허무하고 답답한 건 나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한국 경제는 산업화 자금이 쪼들려 급하게 한일협정을 맺었던 1965년 당시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 우리에게 10억 엔은 힘깨나 쓴다는 국회의원들이 쪽지 한 장으로 늘린 자기 지역구 예산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10억 엔에 역사를 팔았다는 세간의 비아냥이 그냥 흘러 다니는 말이 아니다. 겨우 그 돈을 받자고 소녀상을 철거하고,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위안부 자료를 휴지통에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역사’가 아니다.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오늘의 역사를 제대로 써나가야 한다. “역사문제는 무역처럼 협상해서는 안 된다”는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 대학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참으로 뼈아프다.

한 나라의 문화를 재는 척도는 신용과 신뢰, 양보 배려 같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수준이다. 영국의 중앙은행을 지나 스레드니들 거리를 오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옛 런던 증권거래소 건물이 나온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색창연한 벽에는 라틴어 경구가 새겨져 있다. ‘Dictum Meum Pactum’(나의 말이 곧 나의 계약이다). 이 한마디가 영국을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만든 신용서약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도 이러한데 나라와 나라 사이의 신용과 신뢰의 중요성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이런 방식의 역사문제에 대한 협상은 두 나라의 ‘불가역적 선린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합의의 최대 피해자는 하루아침에 돈 거래의 대상이 돼버린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입에 올릴 수 없는 고초를 겪었던 분들이다. 할머니들의 노후는 우리 국민과 정부가 나서면 된다. 왜 국가가 허약하여 지켜 드리지 못한 분들의 가슴에 두 번씩이나 못을 박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 다른 피해자는 아베 정권 아래에서 보고 배우는 일본의 미래 세대일 것이다. 홍수가 나면 강가의 작은 나무들이 먼저 쓰러지듯, 지도자가 국가에 재앙을 부르면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만약 오랜 불황에 지친 일본 국민들이 아무런 이성적 판단 없이 아베의 폭주에 박수를 친다면 일본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 역시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진솔하게 합의 과정과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가해자의 입을 통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듣게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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