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딱지떼기④] 법조기자의 기본, ‘삐딱하게 보기’

입력 2016-01-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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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9기 수습 박규준(왼쪽부터), 이광호, 이새하, 김하늬 기자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노진환 기자)

“어제 왜 그 사람은 3시간 동안 서 있었던 거야?”

선배의 물음에 머리가 띵했다. 지난 달 17일,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선고공판이 있었다. 그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통상적으로 선고공판은 1시간 이내에 끝나지만 그 재판은 3시간가량 진행됐다. 가토 다쓰야는 그 긴 시간 내내 꼿꼿이 서 있었다.

그날 모든 공판 과정을 지켜봤지만 피고인이 서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공판이 길어지자 중간에 변호인 측은 피고인이 앉아도 되는지 재판부에 묻기도 했다. 재판장은 굳은 얼굴로 “고령이거나 장애가 없는 한 서서 판결을 받는 것이 원칙”이라며 변호인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때도 재판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 적기 바빴다.

“궁금하지 않았느냐”는 선배의 말이 부끄럽게 다가왔다. 호기심은 기자의 제일가는 덕목이라며, 자기소개서에 스스로를 호기심 강한 사람으로 자화자찬하기도 했기에 더욱 그랬다. 선배의 지시에 부랴부랴 취재를 시작했다. 공보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왜 선고 때 피고인이 서 있는지, 관련 법 규정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원래 피고인은 선고 때 서 있어야 한다”, “관례적 예우다”, “관련 규정이 있긴 한데 알아봐 주겠다”는 두루뭉술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가토 다쓰야가 3시간 내내 서 있을 이유는 없었다. 법원은 2008년까지 판결을 선고할 땐 피고인을 세워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규정돼있는 ‘바람직한 재판운영에 대한 내규’를 운영해왔다. 이 예규엔 피고인의 거동이 불편하거나 판결이유의 요지 설명이 길어질 땐 피고인들을 앉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적혀있다. 설사 이 내규를 따르더라도 가토 다쓰야는 앉아서 선고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법조 출입 3주차, 어느새 취재수첩에 손때가 묻었다.

한 선배는 “법조계(검찰ㆍ법원 등)에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들이 많다”고 말했다. 누군가 ‘왜’라고 물어보면 법조 물정을 잘 모르는 숙맥 취급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관례적 예우'란 이름으로 정당한 의문을 흘려버리는 곳이 법조계다. 이번에 취재한 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관습적으로 행해진 것이기에 의문을 가질 필요 없이 당연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세상에 원래부터 존재했거나 당연한 일은 없다. 관례라고 해서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피로 파괴’라는 말이 있다. 미세한 균열이 오랜 시간 지속된 충격과 압력으로 어느 순간 거대한 선박 하나를 파괴할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기자는 곳곳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충격을 가하는 이들이 아닐까. 기자들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순간, 부당하거나 옳지 않지만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에 미세한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 균열이 어느 날 큰 변화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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