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가 좋다] 문현희, 그가 돌아왔다!…매일 골프일지 쓰며 반성 또 반성

입력 2015-12-21 06:55수정 2015-12-2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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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문현희. 그가 필드로 돌아왔다. 한때 허리 부상과 슬럼프 사이에서 고전하다 시드를 잃은 그가 내년 시즌 출전권을 따냈다. 그의 진짜 골프는 지금부터다. (오상민 기자 golf5@)

문현희(32)가 돌아왔다. 지난해 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드를 잃고 1년 만이다. 그는 지난달 전남 무안CC에서 열린 2015 KLPGA 투어 시드 순위전에서 20위에 오르며 풀시드를 획득, 내년 시즌 투어 판도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문현희를 만난 곳은 경기 수원의 보보스 스포렉스 골프연습장이다. 현재 그가 운동하는 곳이자 예비 신랑 프로골퍼 염동훈(34) 씨가 골프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연습장이기도 하다.

“연습장이 좀 초라하죠.” 멋쩍은 듯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연습장 분위기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시드를 잃은 뒤 1년 동안의 행보가 더 궁금했다. “드라이버 때문에 고생했어요.”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나 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욕심이 과했나 봐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거든요. 한 라운드에 OB가 1~2는 꼭 나왔으니까. 경기가 안 됐죠.”

하지만 그의 표정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내년 시드도 획득했고, 분명 제 스윙을 찾은 걸 거다. 기자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금은 괜찮아요. 마음을 여니까 오히려 스윙이 편해졌어요. OB도 없어졌고요.”

그는 지난해 시드를 잃고 큰 충격을 받았을 듯하다. 한때 KLPGA 투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자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작년에) 시드 떨이지고 너무 좋았어요(웃음). 주변에선 아쉬워했는데 저는 날아갈 듯 기뻤죠. 골프 시작한지 벌써 20년이 됐는데 운동에만 전념해서 내 시간이란 게 없었거든요. 항상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지만 골프란 게 뜻대로 되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도 지쳤던 거죠.”

그의 의외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2004년 정규 투어 데뷔 이후 10년 넘게 유지해온 시드였다. 충격이 없었다면 분명 거짓말일 거다. 태어나 처음으로 쉴 수 있는 명분을 얻어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좀 더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사실은요. 저 은퇴할 생각했어요. 시드 떨어지고.” 그가 말을 이었다. “연습을 해도 고쳐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만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죠.”

이후 문현희는 두 달 동안은 골프채를 놓아버렸단다. 휴식을 취하면서 지금까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즐겼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 삼아 태국 치앙마이로 전지훈련을 따라갔다.

▲시드를 잃고 은퇴를 고민했다는 문현희. 하지만 그는 필드를 떠나지 않았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던 그가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다시 도전한다. (오상민 기자 golf5@)

“처음엔 여행으로 간 거였는데 막상 가니까 놀지는 못하겠더라고요. 다시 이를 악물고 연습하게 됐죠. 한 달 반 동안 있었는데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골프일지를 썼어요. 오늘은 어떤 연습을 했고, ‘어떻게 치니까 잘 맞더라’, 그리고 ‘어떻게 하니 불안감이 없어지더라’ 같은 훈련(심리상태) 내용을 생생하게 기록하며 매일 반성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확신이 생기는 거 있죠.” 문 프로의 얼굴에 자신감이 엿보였다.

문현희는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에도 은퇴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필드를 떠나지 못했다. “주변 분들과 함께 고민을 했는데 부모님은 많이 아쉬워하셨죠. 제가 생각해도 좀 아쉽더라고요(웃음).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은데. 요즘 어린 선수들과 비교해서 비거리 빼고는 뒤질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의 얼굴은 자신감에서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문현희는 올해 드림투어(2부)을 뛰며 경기 감각을 유지했다. 그리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1년 동안 많은 걸 배웠어요. 예전에 휴식이란 걸 몰랐죠. 하루에 10시간 넘게 운동을 해도 피곤할 줄도 몰랐거든요. 불안해서 쉬지도 못했죠. 하지만 지금은 정해진 시간에 집중해서 훈련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어요.”

순간 문 프로를 처음 인터뷰했던 때가 머릿속을 스쳤다. 2004년의 어느 날 밤 경기 용인의 한 골프연습장에서다. 당시 하이마트 모자를 쓰고 있던 문현희는 하루 종일 스윙 연습을 하고도 또 다시 연습을 하겠다면 클럽을 꺼내들고 타석에 설 만큼 의욕이 철철 넘쳤다. 깡 머린 몸매의 철녀였다.

그는 인터뷰 중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사실 내년 5월에 결혼해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사실 시드전 합격은 생각도 못하고 결혼 날짜를 내년 5월로 잡았어요. 근데 결혼 전 주까지는 시합 나갈 거예요. 신혼여행까지 2주 정도만 비우고 모든 시합에 출전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결혼 준비를 해뒀어요. 살 집도 있고, 결혼 사진 한 장만 있으면 돼요(웃음).”

문현희는 이달 27일 태국 방콕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내년 2월 말까지 샷 담금질에 들어간다. 그리고 내년 3월 베트남 달랏에서 열리는 54홀 스트로크 경기(총상금 7억원)부터 출전할 계획이다.

내년 시즌 문 프로의 목표는 시드 유지다. 한때 잘나가던 그였다. 아직도 시드전 탈락 충격 여파가 남아 있는 걸까. 포부까지 소박해졌다.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는데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요.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고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고 싶어요.” 그의 말 속에서 아픔과 성숙이 함께 느껴졌다. 아픈 만큼 성숙한 것 같다.

“올핸 대회장에서 자주 봬요.” 그의 마지막 인사였다.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나는 한마디다. 그의 몸과 마음은 벌써 필드에 있는 것 같다. 30대 돌풍이 기대되는 내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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