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년규 산업1부장
지난달 면세 특허 갱신 심사에서 탈락한 2곳을 대신해 들어온 두산과 신세계도 서울 동대문과 명동에서 내년 상반기 개장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들 신규 사업자가 면세점이라는 대형 매장을 새로 꾸미는 데 드는 비용은 어림잡아 수천억원이다. 대부분 매장 인테리어, 세계 명품들과의 계약, 초도 물량 인수 등에 드는 비용이다.
이런 큰돈을 들여도 장사만 잘된다면 외화를 벌어들여 면세점 운영 업체는 물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 통상 신규 면세 사업은 손익분기 시점을 개점 후 3년 후로 계산하니, 2년까지 손해를 보고 4년 후부터 이익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면세 사업은 몇 곳만 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인식돼 왔다. 지난 10여년간 중국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한 데다, 진입장벽이 있기 때문에 면세 사업자들의 수익은 크게 늘었다. 1980년대나 IMF 때는 문을 닫거나 특허를 반납하는 면세 사업자들이 속출한 적도 있었으나, 우리나라 면세점 시장은 2005년 2조2000억원에서 2014년 8조30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급성장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가장 규모가 큰 면세 시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망한 사업에 뛰어든 신규 사업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5년마다 특허를 다시 받아야 하는 시한부 제도라는 규제 때문이다. 면세점 특허 기간은 원래 10년이었으나 일부 대기업만 특혜를 받는다는 지적이 일자 지난 2013년부터 5년으로 제한했다.
면세점 운영권을 5년으로 바꾼 뒤 그 첫 희생양이 지난 11월 나왔다. 롯데의 잠실 월드타워 면세점이다. 1989년 롯데월드에서 문을 연 이 면세점은 지난해 3000억원을 들여 월드타워로 이전한 지 1년도 채 안 돼 문을 닫았다. 서울 워커힐호텔 면세점도 23년간 운영해왔으나 이번에 갱신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면세 사업의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닌 것이다. 실제 두산이나 신라호텔 주가가 면세사업 획득 이후 반짝 특수를 누렸으나, 이내 효과는 사라지고 오히려 하락 추세까지 보였다.
면세 사업 규제를 포함해 시장에 정부가 개입한다고 해서 모두 부당한 것은 아니다. 시장이 과열되거나 무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재정관리·이자율·세율은 물론 합리적인 규제를 통한 적절한 조율이 있어야 안정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개입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거나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면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면세점 5년 시한부 허가제도 기업의 자율성을 해치는 대표적 규제의 하나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번에 면세 사업에 새로 뛰어든 기업 관계자 역시 5년 규정에 발이 묶여 면세점 업계의 장기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면세 사업을 열심히 하면 뭐합니까? 5년 후에 문을 닫으라면 닫아야죠. 5년 시한부 특허인데 누가 투자를 하겠어요? 일본과 중국이 면세 사업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육성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정책이 만들어진 셈이죠. 그렇다고 한국의 정치 논리상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계 3대 면세 사업자인 롯데도 하루아침에 사업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사운이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셈이죠.”
그는 이를 빗대 ‘진인사 대정명(盡人事 待政命)’이라 요약했다. 모든 인사가 청와대에서 나온다고 해서 만들어진 ‘진인사 대청명(盡人事 待靑命)’의 2탄인가? 기업 관계자가 한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 하고, 정부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일 게다. 정부는 기업이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니라 여전히 기업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