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히말라야’, 해발 8750m 위에서 꽃 핀 휴먼 감동 스토리

입력 2015-12-09 09:13수정 2016-03-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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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지난 2005년, 엄홍길 대장은 에베레스트의 ‘데스존’이라 불리는 8750m 지점으로 향했다. 그의 목표는 정상 등극이 아니었다. 하산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길이었다. 외신들은 경악했다. 산에서 조난한 동료를, 그것도 이미 숨을 거둔 동료의 시신을 가져오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다시 오른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엄홍길 대장과 그의 동료들은 ‘휴먼 원정대’로 명명됐다.

영화 ‘히말라야’(제작 JK필름,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이 과정에 집중한다.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휴먼 원정대가 보여준 60여 일간의 도전에 있다. 오로지 故 박무택을 위해 오른 에베레스트였다. 산에서 얼음이 되어 주검이 된 그의 하산을 위해 뭉친 멤버였다. 그를 위해 모두가 목숨을 걸었고, 가족도 직장도 내팽개쳤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쌓은 우애는 극한 상황 속으로 그들을 내몰았다.

엄홍길(황정민 분) 대장과 수많은 정상을 등극했던 박무택(정우 분)은 어느새 대장이 되어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극한다. 하지만 하산 중 문제가 발생했다. 박무택이 설맹에 걸려 앞을 못 보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동행하던 후배 대원도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 설맹과 탈진으로 더디게 하산하던 박무택 일행은 베이스캠프를 400m 앞두고 더는 전진하지 못한다. 결국 박무택은 탈진 상태에 빠진 후배 대원에게 먼저 하산할 것을 명령한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박무택은 해발 8750m 고지 눈 속에서 혼자가 됐다. 엄 대장과 칸첸중가 8500m에서 비부악(등산시 악천후나 사고가 발생하여 계획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지는 야영)을 하며 밤을 새운 적도 있지만, 혼자였기 때문일까 영하 30도의 추위와 맹렬한 눈보라 속에서 그는 무기력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박무택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섰다. 당시 에베레스트에는 국내외 등반팀이 다수 대기하고 있었지만 야심한 시각 악천후 속 그를 구하러 선뜻 나서는 팀은 없었다. 그 자체로 자살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 때 박무택을 구하기 위해 혼자 등반에 나선 이가 있으니 바로 박정복(김인권 분) 대원이다. 그는 홀로 산을 올라 박무택을 만났고, 그가 혼자 쓸쓸히 죽지 않게 곁을 지켜줬다. 그리고 그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훗날 엄홍길 대장은 “자신의 등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등반이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박무택을 구하기 위한 박정복의 쓸쓸한 등반을 꼽았다.

휴먼 원정대와 박정복의 등반은 산을 정복하기 위함이 아닌 동료를 구하기 위한 등반이었다.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에베레스트의 험난함에 맞선 산악인의 끈끈한 우정은 긴장감과 감동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석훈 감독은 이 과정을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이 놓인 위치와 최후의 모습, 얼음이 되어 100kg으로 불어난 박무택의 시신을 돌무덤에 안치하는 과정이 사실과 흡사하게 그려지며 실화 소재 영화의 묘미를 살린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제시장’에서도 보여줬던 윤제균식 신파가 극에 달한다. 박무택과 산에서 형제가 된 엄 대장의 오열과 남편의 시신조차 볼 수 없는 아내 최수영(정유미 분)의 슬픔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휴먼 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동료애를 실천한 산악인의 모습은 산을 오르는 인간 본연의 목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관객은 자신의 인생을 그들의 치열함과 비교하며 공감한다.

이 모든 것은 웅장한 히말라야 산맥의 구현을 전제로 한다. ‘히말라야’는 산악 다큐를 방불케 하는 스케일로 볼거리를 자아낸다. 실제 산을 오르는 듯한 1인칭 카메라 구동과 해발 4500m 고지와 몽블랑 등에서 진행된 촬영, 보기만 해도 추위가 느껴지는 CG 기술은 잘 어우러져 험준한 히말라야를 그려낸다. 또 자신의 날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산악인의 표정을 연기한 황정민, 정우 등 배우의 열연도 실제 8000m 고지에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엄홍길 대장을 알지만, 그의 목숨을 건 등반과 리더로서 속내를 들여다볼 기회는 적었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최전선에서 엄 대장과 그의 동료들이 느꼈던 치열한 삶과 그 이면에 있는 평범함 속에 숨겨진 희로애락이 ‘히말라야’에 담겨 있다. 상영시간 125분, 12세이상관람가, 오는 16일 국내 개봉.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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