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 25] 난치병 환자에게 건강과 행복을 되찾아 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입력 2015-11-1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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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이사

‘세계 최초의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국내 줄기세포 치료제 사상 첫 수출, 제7회 세계줄기세포정상회의 초청, 글로벌 첨단바이오 의약품 기술개발 사업 주관기관, 제대혈은행 분야 시장 점유율 1위, 국내 최초 이식용 제대혈 해외 공급…’

현재 전 세계 줄기세포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은 바로 메디포스트다. 하지만 이 화려한 기업의 도전은 지난 2000년 6월 서울의 어느 비좁고 허름한 임대 사무실에서 10명 남짓한 직원들과 함께 시작됐다. 제대혈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아침부터 산부인과를 돌며 영업하고 저녁이면 방음도 잘 안 되는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 한쪽에서 연구를 했다.

당시 제대혈은 출산 후 그냥 버려지고 있었고, 병원을 찾아가면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계획도 번번이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직원들의 월급날이 돌아오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걱정이 앞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여왕과 함께 한참을 달렸는데도 제자리에 있게 된다. 이유를 궁금해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말한다. “이곳은 예전에 살았던 곳과는 다르다. 온 힘을 다해서 달려야 지금 자리에라도 있을 수 있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예전보다 몇 배 더 빨리 달려야 한다”라고.

줄기세포 분야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상업화 연구가 시작됐기 때문에 누구든 순식간에 치고 나갈 수 있고, 반대로 조금만 정체해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뒤처질 수 있다. 게다가 경쟁자들은 매출 수조원에서 수백조원에 이르는 해외의 공룡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신생 바이오 벤처는 자칫 도태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만 1000여개 이상의 바이오 벤처가 생겨났지만, 독자적인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진 곳이 많다. 그래서 메디포스트는 생존을 위해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처럼 훨씬 빠르게 뛰어야 했다.

안정적인 대학병원 의사 자리를 걷어차고 나와서 창업을 했던 이유는 환자들 때문이었다. 백혈병·소아암 환자들이 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해 이식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면서, 가족제대혈은행과 새로운 개념의 난치성 질환 치료제 연구가 절실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 창업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신생아의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보관하는 ‘제대혈은행’ 서비스를 첫 사업 모델로 계획하고, 장기적으로는 제대혈 줄기세포를 배양해 난치병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때까지 두 아이템 모두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라 실패의 위험이 컸지만, 그만큼 도전하고 싶은 매력도 있었다.

제대혈은 최근 관련 법이 제정될 정도로 인식이 높아졌지만, 창사 초기에는 생명 자원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라 영업이 쉽지 않았다. 우선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제대혈을 알려야 했다. 방법은 많지 않았다. 직접 전국의 산부인과를 돌며 제대혈의 가치와 보관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때로는 환자들 사이에 줄을 서서 대기 번호표를 뽑고 진료 차례가 되면 진료실에 들어가 제대혈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얻어야 할 정도로, 일선 의사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제대혈 줄기세포를 배양해 신약을 만드는 일은 더욱 쉽지 않았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는 엄청난 연구비가 필요했고, 적어도 10년 이상은 이 연구에만 매달릴 인내와 각오도 필요했다.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성과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컸다. 과학적 원리에 연구자의 상상력을 더해, 말 그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찾아가는 과정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특히 배아 줄기세포 분야에서 논문 조작과 연구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회사는 개점 휴업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나라 전체가 떠들썩해지고 줄기세포 전체에 대한 오해로 이어졌다. 2005년 4월, 국내 줄기세포 사상 처음으로 식약처의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던 신약 연구는 임상 환자를 모집하지 못하고 1년여간 멈춰 섰다. 비통함은 둘째 치고 한시가 아까운 해외 경쟁사와의 싸움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즈음 제대혈은행도 휘청였다. 제대혈이 일반인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자 대형 제약회사와 병원 등에서 무더기로 제대혈은행 사업에 진출, 20개 가까운 은행들 사이에 덤핑 경쟁과 상호 비방이 난무했다. 그즈음 ‘보관된 제대혈 줄기세포의 생존율이 낮다’는 유언비어까지 퍼지면서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그러나 우리는 연구를 계속했다. 오히려 치매·뇌졸중 등의 신경계 질환과 폐 질환 등 후속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전임상 시험에 더욱 전념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미래를 생각하며 연구·개발(R&D)에 매년 매출의 50% 이상을 퍼부었다.

제대혈은행 사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혈 줄기세포의 해동 후 생존율에 대한 과학적 자료를 만들고, 더 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제대혈을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 정부기관·병원·산모교실 등을 더욱 열심히 찾아다녔다. 한편으로는 제대혈 검사와 보관 과정에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과 장비를 도입하고 먼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1년여의 방황 아닌 방황 끝에 줄기세포 임상시험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제대혈 업계도 활기를 되찾았다. 몇 배 더 빠르게 뛰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처럼 몇 번의 장애물을 넘으며 쉬지 않고 달려온 곳이 지금 메디포스트가 서 있는 곳이다.

메디포스트는 2012년 세계 최초의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을 개발한 데 이어, 현재 미국에서의 임상시험도 1·2a상 투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알츠하이머형 치매 치료 연구인 뉴로스템의 임상시험도 전 세계 의약계의 관심 속에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미숙아 기관지폐이형성증 치료제인 뉴모스템은 제2상 임상시험을 마치고 자료를 분석 중이다.

이들 치료제의 임상뿐 아니라 해외 허가 및 라이선스 아웃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주사형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당뇨병성 신증 치료제, 탈모 치료제 등 새로운 신약 파이프라인의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의 세계 최고 수준을 뛰어넘는 차세대 줄기세포 개발을 위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국내외 특허를 취득하는 등 메디포스트는 끊임없는 혁신을 준비 중이다.

창업 초기, 메디포스트에 보관했던 제대혈로 첫 소아 백혈병 환자가 이식 수술을 받던 날의 뿌듯함은 지금까지도 어려운 시기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된다. 심각한 관절염을 앓던 히딩크 전 축구 감독이 줄기세포 치료제 투여 후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지난 십수년의 힘들었던 순간들도 보람이 된다.

우리는 일의 결과를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 나누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노력이 난치병 환자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되찾아 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이를 내일도 우리가 달려야 하는 이유로 삼는다.

사업 내용에서 성취감을 느끼면서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그런 면에서 메디포스트는 희망적이다.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몇 배 더 열심히 달려야 하는 것은 동화 속 앨리스와 같지만, 달리는 과정 자체에도 의미를 두고 있기에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양윤선 대표는,

현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발전자문위원회 부위원장

현 보건복지부 첨단의료복합단지위원회 위원

현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과 겸임교수

2011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2011년 제7회 세계줄기세포정상회의(World Stem Cell Summit) 초청

1994년 성균관대학교 의대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및 교수

1989년 서울대학교병원 임상병리과 전공의

1989년 서울대 의학과 졸업

메디포스트는,

2015년 국내 최초, 제대혈 보관량 20만Unit 돌파

2014년 경기 판교테크노밸리 사옥 준공

2013년 폐질환 치료제 뉴모스템 미국 희귀의약품 지정

2012년 알츠하이머형 치매 치료제 뉴로스템 제1·2a상 임상시험 승인

2012년 세계 최초,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 판매 허가 취득

2011년 세계 최초, 제대혈 줄기세포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 승인

2010년 국내 최초, 뇌성마비 제대혈 치료 임상시험 수행

2005년 국내 최초,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

2005년 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 스타 프로젝트’ 주관기관 선정

2000년 메디포스트 창립 및 제대혈은행 서비스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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