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실한 사람’ 공방

입력 2015-11-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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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전 국민일보 주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야당의 천막 당사와 야당 대표의 노숙투쟁, ‘NLL 포기 발언’ 진실게임, 철도노조 파업(2013년), 세월호 참사, 유병언 및 구원파 수사, 세월호 특별법 정쟁, 전방 GOP 총기난사 사건, 병영 내 가혹행위와 살인성 상해치사 사건(2014년),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자살, 리스트 파문과 현직 총리의 사퇴, 북한군의 DMZ 지뢰 도발(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절반이 격랑 속에 지나갔다. 이른바 4대 개혁, 부정부패 척결, 비정상의 정상화 등 국정과제들은 시동조차 제대로 걸리지 않은 채다. 대통령도 사람인 이상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무회의 때마다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단지 메아리뿐인 것 같아 통탄스럽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향해 “앞으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을 이어갔다.

새누리당 측은 ‘배신의 정치’에 이어서 다시 박 대통령의 강한 질책성 발언이 나오자 말로라도 분발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안으로는 대통령의 그 말이 ‘대대적인 공천 물갈이’ 의지의 표현이 아니냐 해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라고 들린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부친 빈소에 박 대통령의 조화와 조문이 끝내 없었던 데다 문상을 간 친박 윤상현 의원이 하필이면 그 자리에서 ‘TK(대구 경북) 공천 물갈이’를 강조한 다음 날 나온 대통령의 경고였던 탓에 충격이 더 컸을 법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한목소리로 ‘선거 개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문재인 당 대표는 “자신의 사람들을 당선시켜 달라는 노골적인 당선운동인 동시에 야당과 (새누리당 내) 비박에 대한 노골적 낙선운동”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한나라당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했는지 되돌아보면서 자중하기 바란다”고 몰아세웠다.

정치권으로서는 반발할 만도 하다. 그러나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물론 박 대통령의 언급에서 ‘배신의 정치’ 여음이 감지되긴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국민에 대해 할 바를 못하는 국회’에 대한 비판이다. 이 점에서는 작년 9월 16일 국무회의 때 “만약에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때 국민에게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 말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불쾌하더라도 스스로를 한 번쯤은 돌아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에게는 반발하고 비난하고 비판할 권리만 있고, 수용하고 자성하고 분발할 의무는 없다고 한다면 그건 후안무치다. 말인즉슨 옳은 말 아닌가. 오직 국민을 위해 책무를 다하는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은 선거 개입이 아니라 국민적 상식의 재확인이다.

정부의 성공을 위해 애쓰지는 않으면서 집권의 이익은 나눠 누리고 싶어 하는 여당, 현 정부의 실패를 통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야당이라면 이는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배신’하는 ‘가식과 허위’의 집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선거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자 새로운 선택이다. 당연히 배신의 정치, 허위의 정치는 걸러져야 하는 것 아닌가.

다만 박 대통령의 거듭되는 정치권 비판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오히려 꼬이게 하는 요인이 될 뿐이라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선(善)을 독점하려 할 때 저항은 커지게 마련이다. 국회와 정당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옳은 일’을 하는데 왜 그런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냐고 따지는 것은 지극히 비정치적 태도다.

대통령이 직접 거듭해서 그처럼 격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정치권을 공격하도록 만든 청와대 참모들과 내각 각료들은 맹성해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최종적’인 것이어서 일단 발설된 후엔 되돌릴 수가 없다. 그 이전에 문제를 풀어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무게와 권위를 지키게 하는 것이 바로 참모들의 책무다. 대통령을 논쟁의 전면으로 내모는 정부는 성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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