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1988’이 주목한 1988년의 문화ㆍ사회적 상황과 의미는?[배국남의 대중문화읽기]

입력 2015-10-05 07:13수정 2015-10-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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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1988' (사진=tvN)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1994’를 연출해 복고 신드롬을 일으킨 신원호PD의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가 11월초부터 시청자와 만난다. 198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을 배경으로 아날로그식 사랑과 우정, 평범한 소시민 가족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벌써부터 ‘응답하라 1988’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그렇다면 1988년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과 문화적 문양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우리에게 1988년은 어떤 의미일까.

이행과 결별이다. 정보화 사회와 국제화, 남녀동등시대로의 이행, 권위주의 정부와 하드웨어 지상주의, 소아병적 열등감, 경직된 도그마와의 결별이다. 이 같은 이행과 결별의 본질과 결과를 누군가는 ‘개방’이라고 명명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유’와 ‘민주화’라고 이야기한다. 기성세대와 다른 자신의 개성을 거칠 것 없이 자신 있게 드러내는 ‘신세대’ 부상이라고 특징짓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1988년 풍경이다. 개방과 자유, 민주화, 그리고 신세대는 서울올림픽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문양으로 표출됐다.

1988년. 국제적으로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 인한 냉전 종식, 국내적으로 저달러·저유가·저금리 3저를 기반으로 한 경제호황과 고도성장, 그리고 1987년 6.10항쟁의 결과물인 직선제에 의해 선출된 노태우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한 권위주의 정부의 종언 등 역사의 진화가 역동적으로 이뤄진 한해다. 여기에 한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국민의 정서와 인식에 큰 변화를 초래한 서울올림픽, 대중의 생활과 문화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해외자유화(1989년 1월부터 실시)정책 결정, 맥도날드 국내 입점과 미국 할리우드의 직배 시장 개방으로 대변되는 외국 문화의 본격적인 수입 역시 1988년의 의미와 문양을 수놓은 것들이다.

1988년은 문화 특히 대중문화 패러다임의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그 변화의 기저에는 정치, 경제적 사건과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인 서울올림픽 등이 자리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결과는 자유와 개성으로 넘쳐나는 다양한 문화 양산과 대중문화의 소비와 제작의 주체로서 10~20대 부상으로 나타난다.

1988년을 소환시킬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1988년의 상징이자 기표는 바로 서울올림픽이다. 160개국에서 1만3,304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올림픽 역사상 최다 참가국과 참가인원 기록을 경신하며 성공을 거뒀다. 그뿐만 아니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냉전으로 반쪽 대회가 됐던 것과 달리 서울올림픽은 분단국가인 한국에 냉전으로 대립하던 각국이 모이며 냉전 종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성공적으로 주최한 서울올림픽은 국민에게 자신감을, 세계 각국에 한국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심어줬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식과 문화를 국제화, 개방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 때문에 “한국인은, 특히 젊은이들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왕년의 고질적인 고립주의, 패배의식, 열등감을 털어버렸다”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의 언급 같은 분석들이 홍수를 이뤘다.

▲'응답하라 1988'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88년은 대중문화 폭발기다. (사진=tvN)

대통령 직선제, 권위주의 정부의 종식,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집중된 세계의 이목 등으로 민주화는 본격화했고 3저로 인한 경기호황은 ‘마이카’로 상징되는 소비생활 수준을 높였다.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신장하고 개성이 강조되는 분위기 조성되면서 다양하면서도 독창적인 문화가 양산됐다. 고도성장의 과실을 먹고 뉴미디어의 세례를 받은 10~20대는 대중문화 소비의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대중문화를 10~20대 중심으로 재편시켰다. 그리고 기계 등 하드웨어와 노동력 등 힘을 근간으로 하는 산업사회에서 소프트웨어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을 하면서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는 문화의 가치가 부각되고 남녀 차등의 시대에서 남녀 동등의 시대로의 전환이 진행됐다.

물론 1988년의 어두운 얼굴도 존재한다. 서울올림픽 성공에 도취해있던 1988년 10월 16일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우리 법이 이렇다”라고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강헌 탈주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고도성장 과실의 일부계층 독점과 부패한 권력이 낳은 1988년의 어두운 우리사회 이면이었다.

지강헌 사건을 비롯한 부정적 사건과 현상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자유, 개방, 국제화, 개성, 민주화, 소비수준의 향상, 10~20대와 여성의 부상은 1988년의 등가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이 대중문화와 패션을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자유와 개성 등 1988년의 등가물은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인 이상은이 MBC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일으킨 ‘담다디’ 신드롬으로,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어 기성세대와 차별화한 신세대의 아이콘, 신해철의 무한궤도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관심을 끈 ‘그대에게’열풍에서 잘 드러난다. 10~20대 초반 청소년들의 열렬한 지지로 소방차 등 댄스그룹들이 스타덤에 오르는 현상을 일상화시켰다.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 조용필의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강애리자의 ‘분홍 립스틱’등 다양한 장르 음악의 공존을 가능하게 했다.

가족의 사랑과 화목을 전면으로 내세운 주말극과 일일극이 득세하던 TV 안방극장 풍경 역시 미국 미니시리즈 영향을 받아 개성적이고 감각적인 영상과 젊은이들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미니시리즈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크게 변모했다. 1988년 MBC 개그 콘테스트 금상을 수상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박미선으로 대변되는 개그코미디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은 곧 슬랩스틱과 콩트로 대변되는 전통코미디의 퇴조를 가져왔다.

1988년 영화계에서는 ‘다이하드’로 대변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관객독식이 여전했지만, 한국영화의 변화를 주도할 인재들이 속속 영화계에 진입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진행됐다. 1988년 미국 할리우드의 직배 시장이 국내에 개방되자 이에 따른 국내 영화제작 산업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신철 등 젊은 인재들이 영화계에 진출해 영화사 신씨네 등을 만들어 한국영화의 변화를 선도했다. 이들은 1990년대 들어 ‘결혼이야기’등 시장과 사회문화적인 트렌드 분석에 맞춰 계획된 기획영화로 한국영화의 화려한 부활을 이끈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1988년은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혁명적 변화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글은 ‘더셀러브리티’10월호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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