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전 건설교통부 장관
통일은 우리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지만 많은 후유증을 겪지 않으려면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중요한 통일 준비 과제의 하나는 통일 비용의 조달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통일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지 알아야 하는데 신뢰할 만한 추계가 없다. 대부분의 추계가 거시경제 모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데 몇 가지 이론적인 가정만 근거로 해 타당성이 의문시된다. 예컨대 가장 최근에 발표된 2014년 금융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통일 후 북한의 1인당 GDP를 현재의 1200달러 수준에서 20년 안에 1만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경제개발비를 5000억 달러(약 550조원)로 전망하였다. 이것은 통일 비용을 너무나 과소평가한 비현실적인 전망이다. 동 자료에 의하면 철도, 도로, 전력 등 기반시설에 20년간 1400억 달러, 1년에 70억 달러(약 7조7000억원) 소요되는 것으로 보았다. 현재 사실상 철도, 도로, 전력 등이 완비된 상태인 남한의 2016년 관련 예산이 23조원이다. 도로, 철도 등 기반시설이 노후하여 사실상 모든 시설을 새로 건설해야 할 북한의 기반투자 수요가 연 7조원이라는 것은 턱없이 적은 것으로 판단된다. 거시모형에 의한 통일 비용 추계는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실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부터 현실적인 통일 비용 전망을 해야 한다.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같이 각 부처가 참여하여 분야 별로 전망 작업을 해 보아야 한다. 즉 도로, 항만, 기초생활보장비 등을 부문별로 추계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10여년 동안 매년 130조원 정도를 통일 비용으로 투입하였다. 당시 서독인구는 6200만명이고 동독인구는 1600만명으로 동독인구는 서독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반면 남한인구는 5100만명이고 북한은 2500만명으로 북한인구는 남한의 2분의 1이다. 동독인구가 서독에 비해 매우 적고 동서독 모두 경제적으로 남북한보다 나은 반면 북한은 인구도 상대적으로 많고 1인당 GDP도 독일보다 적어 SOC 등 기반투자와 복지비 등의 남북한의 통일 비용 부담은 독일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산된다.
막대한 통일 비용은 국민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므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달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통일 비용 조달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제대로 논의가 없는 것 같아 걱정된다. 통일 비용 조달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통일기금의 적립이다. 기업이나 개인은 큰일에 대비해 필요한 자금을 사전에 저축하여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통일기금을 적립하는 식으로 준비할 수 없다. 예컨대 정부가 통일에 대비해 매년 통일기금으로 10조원씩 적립한다고 하자. 이 경우 적립된 수십조 또는 수백조 자금을 국내 민간에게 빌려주면 갑자기 통일될 때 단기간에 거액의 자금을 회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급격히 회수하면 금융시장에서 대혼란이 예상된다. 이를 해외기관에 예치한다면 국내에 소비, 투자할 돈이 그만큼 줄어들어 경기가 위축될 것이다. 금년의 경우 국채를 발행하면서 경기부양을 하는데 한편으로는 통일기금으로 10조원을 걷어 해외에 예치한다면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없다. 앞으로도 적자재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을 터인데 매년 거액의 자금을 통일기금으로 적립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통일이 될 경우 기존 지출 조정만으로 막대한 통일 비용을 조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증세나 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이다. 증세나 국채 발행이 국민경제에 부담이 안 되도록 하려면 조세부담률과 국가 부채비율을 평소에 낮게 유지하여 통일 시 인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 부채비율은 GDP의 38% 수준으로 건전한 편이지만 고령화로 인한 복지비 증가와 각종 연금과 공기업 부채 등 잠재적 국가부채를 감안하면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통일비용 준비는 재정건전성 유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