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현장] 박세리가 남긴 박인비의 과제

입력 2015-09-0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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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 하지만 아직 과제가 남았다. 박세리도 극복하지 못한 단 한 가지가 있다. (AP뉴시스)

골프 주간이다. 전 세계는 지금 골프라는 필드 위 드라마를 보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투어 메이저 대회가 이번 주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올 시즌 프로골프의 클라이맥스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는 플레이오프가 한창이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와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에서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이 열린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각각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한국 선수들이다.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27·KB금융그룹)는 슈퍼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하고,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사상 첫 2주 연속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달성한 이보미(27·코카콜라재팬)는 3주 연속 우승이자 시즌 상금왕 굳히기에 나선다. 특히 박인비는 LPGA투어 한국 맏언니이자 우상인 박세리(38·하나금융그룹)가 그토록 염원하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먼저 달성하며 세계가 인정하는 ‘골프 여제’가 됐다. 시즌 성적은 4승으로 세계랭킹과 상금순위, CME 글로브 포인트, 올해의 선수, 평균 타수 등 대부분 타이틀에서 1위다.

사실 박인비에게 박세리는 넘기 힘든 산이었다. 박세리가 누구인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연장 혈투 끝에 드라마틱한 우승을 장식,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 가슴에 희망을 안긴 영웅이다. 사투 끝에 흘린 그의 눈물은 한국 여자골프 전성시대의 발판이 됐다.

공교롭게도 박인비의 첫 우승도 US여자오픈이었다. 그러나 박인비는 US여자오픈 우승을 발판으로 승승장구한 박세리와 달리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슬럼프를 겪으며 골프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박인비는 슬럼프 극복을 위해 미국에서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고, 스윙을 교정하며 전매특허 쇼트게임을 완성했다. 그리고 박세리가 오르지 못한 고지에 올랐다.

어찌 보면 기적과 같은 부활이다. 그래서 그의 플레이는 늘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박인비에겐 박세리가 남긴 마지막 과제가 있다. 그것은 슈퍼 커리어 그랜드슬램도 명예의 전당도 아니다. 그냥 ‘아름다운’ 도전이다.

박세리는 2004년 명예의 전망 입회 조건을 갖춘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모든 것을 다 이뤘기 때문일까.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후 박세리는 골프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계획이다. 굵고 짧았던 그의 전성기는 감동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동시대 라이벌 캐리 웹(41·호주)은 지난해 JTBC 파운더스컵과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끝나지 않은 전성기를 입증했다. 올 시즌 우승은 없지만 톱10에 세 차례 들며 여전히 왕성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줄리 잉스터(55·미국)는 어떤가. 커리어 그랜드슬램과 명예의 전당 입회 꿈을 이룬 전 세계 골퍼들의 로망이다. 하지만 잉스터는 철저한 자기관리 속에서 끝도 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도전 앞에 늘 ‘아름다운’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바로 그것이 박인비가 극복해야 할 마지막 산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팬들 곁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아름다운 영웅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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