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성공보수 무효'라던 대법원, 국선변호인에 사실상 성공보수 지급 논란

입력 2015-09-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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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국선변호인 보수 지급은 사선 변호인 성공보수 약정과 성격 달라… 관련 내규 검토 중"

최근 '형사 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 대법원이 최근 7년여 간 무죄판결을 받은 국선변호인에게 사실상 성공보수를 지급해 온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대법원에 따르면 현행 '국선변호에 관한 예규'는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경우 국선변호인에게 기본보수액의 100% 범위 내에서 보수를 더 주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무죄 판결을 이끈 경우 뿐만 아니라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건의 국선변호인이 불기소처분이나 약식명령을 받아내도 마찬가지로 역시 기본 보수액의 100%를 더 지급하고 있다. 변호사 업계에서 통상 체결하는 성공보수 약정과 거의 유사한 구조다.

■ 변호사업계, "성공보수 무효 판결과 모순"

전담이 아닌 국선변호인이 각 심급별로 지급받는 보수는 30~40만원에 불과하지만, 변호사업계에서는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라고 판결한 대법원이 그동안 국선변호인들에게 성공보수를 지급해 온 것은 모순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판결 당시 대법원이 "형사 절차는 판사와 검사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있어 변호사의 노력만으로는 성공이라는 결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시한 부분과는 맥락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는 지난 27일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언급됐다. 새누리당 소속 김용남 위원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선량한 풍속 기타 양속에 반한다고 해서 무효라고 판결한 그 내용을 대법원이 예규에 담고 있다"며 "엘리트 법관들로 구성돼 있는 최고 법원의 실력을 지금 의심할 정도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대법원, "사선 변호인 성공보수와는 성격 달라…현행 예규 검토 중"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선 변호인의 성공보수 약정과 국선변호인 보수는 성격이 전혀 다르므로 대법원 판결과 모순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무죄가 선고된 경우는 변호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큰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사안의 어려움이나 국선변호인이 수행한 직무의 내용, 사건처리에 소요된 시간 등을 참작한다는 취지이지, 무죄라는 결과와 결부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형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무죄판결을 받기 위해 훨씬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은 사선 변호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대법원이 너무 형식논리에 치우친 답변을 하고 있다"며 "성공보수 약정이라는 게 사안에 따라 무효로 볼 만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판결한 대법원이 자가당착인 상황에 빠진 셈"이라고 말했다.

■ 대법원, 예규 검토… "폐지해도 큰 문제 없을 것"

대법원은 논란이 이어질 경우 해당 예규를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규칙은 대법관 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예규는 법원행정처장의 결재만으로도 개정과 삭제가 가능하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해당 예규를 폐지하더라도 재판장이 재량으로 보수를 증액할 수 있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보수 지급에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무죄나 불기소처분에 대해 보수를 100% 올려 지급하도록 하는 규정은 재판부가 보수 증액 규정을 활용하는 것을 장려하자는 차원에서 신설된 조항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무죄 등에 관한 보수 규정은 2006~2007년에 도입됐다.

이에 대해 국선변호 경험이 많은 국중권(47) 변호사는 "만일 일관된 법리 적용을 위해 해당 규정을 없앤다고 하면 국선변호인이 절차 진행에 관여한 정도, 변론기일 참석 횟수 등을 구체적으로 고려해 보수를 지급하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마련한 뒤에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단체에서는 대법원이 그동안 실질적으로 성공보수를 지급해온 만큼 성공보수 약정을 모두 무효로 볼 것인지에 대해 재논의를 해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조건으로 성공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무효라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변호인이 실체적 진실 발견에 기여했다는 점을 대법원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라며 "예규를 개정할 필요는 없지만, 무죄를 조건으로 하는 성공보수 약정은 입법을 통해 유효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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