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역사를 만든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7>인터뷰- 이케다 에리코 日 WAM 관장

입력 2015-08-2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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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도 이곳 전시물 본다면 과거사 부정 못해”

▲위안부 관련 자료들에 대해 설명하는 이케다 에리코 WAM 관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최근 발표한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쟁 속에서 명예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과거형’ ‘간접형’으로 이루어진 담화는 침략 전쟁으로 피해 받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회피해 깊은 실망을 안겼다.

위안부 증언을 해 주었던 할머니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전쟁을 경험 못한 세대로 넘어가고 있지만 일본의 학생들은 위안부의 존재가 언급조차 되지 않는 역사 교과서로 학습하고 있다. 성인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더라도 금기시하는 것이 위안부라는 존재다.

이케다 에리코(池田惠理子·65)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 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관장은 역사를 부정하고 가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위안부 관련 자료를 모으고 세상에 알리고 있다. 엄연히 존재했던 위안소를 증언을 토대로 지도로 만들었다. 위안소의 규정과 사진, 공문서, 증언 비디오 등이 작은 자료관 내에 빼곡히 차 있다. 방문자들이 쓴 감상 노트에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랍다는 내용이 많다. 사실 이케다 관장 또한 1991년까지 위안부의 존재를 몰랐다.

“NHK에서 PD로 근무하다 1991년 취재를 통해 위안부의 존재를 알게 됐다. 태평양전쟁 당시 중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던 아버지도 전혀 얘기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알고 나니 일본 정부가 위안부나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위안부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1997년까지 8편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인으로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을 터. “위안부 프로그램이 방송되자 우익 단체들이 항의와 협박을 했다. 어머니만 살고 계신 내 고향에 내려가 항의를 했고 격렬하게 맞붙기도 했다. 그래도 이건 우리 일본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거의 취재를 오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취재하러 온다. 힘들어도 우리가 자료관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37년간 NHK에서 일하고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이케다 관장 역시 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길을 걸었을 게 분명하다.

“제가 NHK에 들어갔던 1970년대엔 남성이 80명 뽑혔다면 여성은 3명 정도 뽑히는 식으로 매우 적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만들어지면서 조금씩 상황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의 숫자가 적고 위상도 낮다. 그래도 내가 20년 전 PD 시절 만들었던 ‘여성은 치한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같은 프로그램은 만들지 않아도 되고, 1980년대엔 있지도 않았던 성희롱이란 단어도 있다. 점점 나아져야 할 것이다.”

이케다 관장은 “매년 적자이고 어렵지만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일을 할 것이다. 피해자 사실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게 하고 공식 사과와 배상을 하게 하고, 이것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일이다. 정부가 숨기려 들기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 현재 일본 언론들은 위안부, 난징(南京)대학살, 쇼와(昭和) 천황의 전쟁 책임문제를 모두 금기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라도 나서서 이걸 알려야 한다. 일본인들도 의식이 있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은 자료관을 찾아오신다. 교육자들도 많이 방문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와서 전시물을 본다면 과거를 절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작지만 출발 후 10년간 꿋꿋이 운영해 온 WAM. 없어질 수 없는 과거를 갈무리하고 그것을 전파하려는 의지력이 이 작은 공간에 충만했다. 단발적인 구호와 시위보다 어쩌면 이런 ‘공간’의 존재가 이어지는 것이 더 힘이 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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