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취재] <6>중국 ‘부녀아동박물관’

입력 2015-08-18 15:17수정 2015-09-0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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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업받던 여성 해방시킨 중국 사회주의 ‘女權의 전당’

2010년 개관 중국다운 웅장한 규모…중국 역사 속 여성의 삶 전시

쑹칭링 전 국가부주석 전면 배치 中혁명과 여성·아동 지위 향상 강조

▲중국 부녀아동박물관 1층 정문을 들어서면 쑹칭링과 아이들을 담은 사진이 바로 보인다. 양성평등 실현에 애쓴 쑹칭링은 중국 여성 최초로 국가 부주석에 올랐다.

아시아,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 여성의 지위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억압 구조 안에 자리해 왔다.

중국은 예외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 덕분(?)이기도 했다. 중국은 1949년 10월 1일 신중국(新中國) 수립 이후 혁명 완수라는 전략적인 목적에서였지만 여성, 중국식 표기로는 부녀(婦女) 해방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봉건사회의 억압받던 전통적인 여성관에 반기를 들고 국가 차원에서 여성 해방과 지위 상승을 위한 정책을 적극 전개했다. 임시 헌법 역할을 했던 ‘공동강령’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여성을 속박하는 봉건제도를 폐지한다. 여성은 정치, 경제, 문화교육, 사회생활 등 각 방면에서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남녀 혼인자유를 시행한다”고 규정했다. 1954년 전국인민대표자대회(全國人民代表者大會, 약칭 전인대) 제1차 회의에서 제정된 중화인민공화국헌법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혼인, 가정, 모친과 아동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과 함께 정부 기능이 마비되면서 여성에 대한 지원도 중단됐으나 오히려 공자 비판운동의 전개로 인해 봉건적이고 가부장적 의식 타파가 이뤄지며 양성평등이 뿌리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1995년 9월 베이징에서 유엔 제4차 세계여성대회가 열렸고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이 양성평등을 중국의 기본 국책으로 선언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우리나라 국회 격인 전인대에선 여성들의 활약을 쉽게 볼 수 있는데, 1978년 제5기 이후 20% 수준을 유지해 왔고 최근에는 더 높아졌다.

베이징(北京) 시내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부녀아동박물관은 이런 중국 여성들의 역사적 지위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5년여 기간을 거쳐 2010년 1월 개관했다. 중국답게 규모도 크다. 건축 면적이 약 3만5000㎡, 5층으로 된 이 건물을 주마간산 격으로라도 돌아보고 눈에 담는 데 두 시간은 넘게 걸렸다.

박물관 건물은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곡선으로 디자인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쑨원(孫文)의 부인이었던 쑹칭링(宋慶齡) 전 국가부주석과 아이들을 담은 사진으로 꾸며진 벽면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원시 시대부터 근현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중국 역사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획돼 있다.

청나라 시절을 보여주는 관에 들어서면 갑자기 천장이 낮아진다. 여성들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전족을 해야 했을 만큼 억압받던 시절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해방’, 즉 사회주의 체제 도입이 여성의 지위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혁명 과정 등이 강조된 측면은 없지 않다. 그러나 ‘중국을 사랑한 여인’으로 불리는 쑹칭링 등 중국 혁명에 깊게 개입했던 여성들이 여성과 아이라는 약자를 위한 구제, 그리고 지위 향상에 큰 공헌을 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부녀아동박물관 건립이 원활하게 진행된 데엔 정부 지원도 큰 몫을 했다. 건립 자금은 중화 전국민주부녀자연합회와 여성 조직 등에서 주도해 모금을 통해 마련했지만 모자란 부분은 정부가 지원했고, 물품의 수집 역시 당과 정부, 각 박물관과 사회 각계가 종합적으로 지원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은 상설 전시 외에 어린이 체험관과 어린이 장난감 전당 등의 공간을 두고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기자가 방문했던 시기가 아동절(6월 1일) 직후여서 아이들이 아동절에 방문해 미술 활동을 한 것이 그대로 전시돼 있었다. 또한 복식 전문가인 양위안 부관장의 노력으로 5층에는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과 한족(漢族) 모두의 전통 복식을 재현해 전시한 ‘여성 의류의 전당’이란 색다른 공간도 마련돼 있다.

공식적인 인터뷰 시간 외에도 전시관을 둘러보는 동안 같이했던 양 부관장은 “여성과 아동을 위하겠다는 구호만으로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 박물관을 통해 역사와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한국에 설립된다면 꼭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6>인터뷰-양위안 중국 부녀아동박물관 부관장

“중국 남성들 가사노동 분담 당연하게 생각”

중국 부녀아동박물관의 업무 대개는 양위안(楊源·59) 부관장의 지휘하에 움직인다. 복식 및 민족학에 정통한 양위안 부관장은 박물관 설립 과정에서도 크게 기여했다. 문화유산의 보호 및 관리 능력은 기본, 여기에 여성으로서의 섬세함을 인정받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학계 등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국 여성들이 적지 않다. 수장이 된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것은 중국에서 여성의 위상이 높다는 것을 방증하지 않느냐고 하자 양 부관장은 손사래를 치며 기자의 표현을 고친다.

“여성의 위상이 높다는 말보다는 여성과 남성의 위치가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것.

역사가 길지는 않아도 일관되게 양성평등 문화를 심기 위해 나서온 정부의 노력도 강조했다.

양 부관장은 “신중국 설립(1949년) 이후 여성의 위상 높이기에 대한 인식이 갖춰지기 시작했고 똑같이 교육받고 혼인의 자유도 갖게 됐다. 마오쩌둥(毛澤東)은 ‘하늘을 떠받치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란 주장으로 교육과 혼인 등에서의 평등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시작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도 이는 유지됐다. 그리고 장쩌민(江澤民) 주석 때부터는 양성평등이 비로소 국가 정책으로 규정되면서 여성의 자유 신장과 능력 발휘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2013년 환구시보에 따르면 중국 내 여성 관리직 진출은 전체의 51%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평균의 배에 달한다. 남녀평등의 묘를 제대로 보여주는 수치다.

양 부관장은 ‘최초’의 이름으로 중국 여성들이 활약한 예도 공들여 밝혔다. 쑹칭링(宋慶齡)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부주석 자리에 올랐으며 1952년엔 대포를 모는 여성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첫 트럭 기사, 첫 기차 기관사, 또한 2012년 배출된 첫 여성 우주인까지. 부녀아동박물관 내 연구인력들이 중국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된 100명의 최초 여성들을 정리해 책자로 만들었다. 인터뷰에 배석해 이 내용을 부연 설명한 연구소 소장이 남성이란 점은 꽤 신선했다.

중국에서는 그렇다면 여성다움, 여성성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양 부관장에게 물어봤다.

그는 “한국에서는 섬세함과 유연함을 여성이 갖는 특성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중국에서는 여성의 정신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자립, 자강, 자신, 자조가 그것이다. 국가에서 정한 것이지만 여성들 또한 동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슈퍼우먼에 가까운 자신의 생활을 들려줬다. “사회에 나가서는 최선을 다해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로서 아내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한 이후에는 밥하고 빨래도 다 한다.”

이는 중국 남성들의 인식이 다른 인근 국가들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이란다. 중국 남성들은 같이 일하는 여성인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

사회의 한 축인 여성들이 어떻게 권익을 신장시켜 왔는지, 그리고 양성평등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선 여성(사)박물관을 짓는 것이 필수라고도 조언했다. 그러면서 중국처럼 ‘국립’으로 지을 것을 당부했다. 그래야 추진력이 흩어지지 않으며, 예산 문제도 좀 더 수월하게 풀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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