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권 승계 내막 ‘황태자의 몰락과 CJ그룹 탄생까지’
◇‘묻어둔 이야기’…그는 왜 선친과 갈등 겪었나? = 이맹희 전 회장은 22년 전인 1993년 삼성 경영권 승계과정을 기록한 ‘묻어둔 이야기’를 출간했다. 지금은 절판됐지만 이 책에는 그가 왜 삼성 경영에서 배제됐는지 설명돼 있다.
이 전 회장은 회고록을 펴낸 이유부터 적었다. 그는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아버지를 존경한다. 이 글 전체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아버지를 폄하 하거나 부정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다”며 “그일이 있은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흘렀고(중략), 다만 나는 진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 뿐이다”라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삼성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 ‘한비사건’을 들었다. 한비사건은 1966년 9월 한국비료 공장 완공을 앞두고 창고에 있던 ‘OTSA’라는 약품을 현장담당 사원이 처분한 일이 드러나면서 삼성은 재벌이 파렴치한 밀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사건이다. 이때문에 차남 이창희씨가 구속되고 한비는 완공후 국가에 넘어갔다. 일명 사카린 밀수 사건이다.
감옥에서 나온 이창희씨는 불만을 품고 아버지 이병철씨의 비리 내용을 청와대에 탄원을 했다. 이는 삼성가의 집안 싸움으로 확산됐다. 이창희씨는 아버지가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고 제일모직과 제일제당에서 탈세했다는 내용의 투서를 청와대에 집어넣었다. 사태를 파악한 이병철 전 회장은 차남 이창희씨의 모반 사건에 이 전 회장이 “그 일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됐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내가 그 일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그 후 알게 됐다고 믿고 있지만, 어쨌든 이 사건은 이른바 삼성의 후계 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이 전 회장은 전국을 돌며 은둔 생활을 했고 아버지 이병철 전 회장이 사망하기 두달 전까지도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1976년 9월 이병철 회장은 암 수술차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 밤 가족들을 모아놓고 삼성의 후계자로 삼남 이건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유언했다며 이 전 회장은 전했다.
이 전 회장은 “어머니와 누이들, 그리고 아내까지 있던 자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의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며 “그 무렵엔 벌써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나에게 삼성의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는 건희에게 삼성을 물려준다는 내용 이외에 삼성의 주식을 형제간들에게 나누는 방식에 대한 아버지의 지시도 있었다. 가족들끼리의 이야기니만큼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덮어 두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이야기는 이 전 부회장이 2012년 2월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제 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몰래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면서 7000억원대의 소송을 제기한 배경과도 무관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19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제일제당 경영인으로 = 1987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숨을 거둔다. 이 회장 사후 그의 자녀들은 삼성전자와삼성생명 등 삼성그룹 핵심 기업을 뺀 다른 기업들을 개별적으로 물려받는다. 이 전 회장은 제일제당 관련 기업을, 막내딸 이명희씨는 신세계백화점을 물려받고 삼성으로부터 독립했다 이후 제일제당은 CJ로 이름을 바꿨으며, 현재는 이맹희 전 회장의 장남 이재현 회장이 CJ그룹을 이끌고 있다.
제일제당, 제일제당건설, 제일씨앤씨, 제일냉동식품, 제일선물 등이 1993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돼 1996년 제일제당그룹이 출범했다. 이후 제일제당그룹은 2002년 회사 이름을 CJ그룹으로 바꿨다. 현재는 이 씨의 아들 이재현 회장이 CJ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 전 회장이 CJ를 세우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CJ그룹은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로 우뚝섰다. 식품과 문화사업, 물류 사업쪽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준 후 이 전 회장은 2012년 12월 폐암 2기 진단을 받고 폐의 3분의 1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암이 전이돼 일본과 중국 등을 오가며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머물며 투병생활을 해왔다.
이 씨는 부인 손복남 씨와 결혼해 이미경 CJ그룹 E&M 총괄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환 CJ그룹 상무를 슬하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