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 12] “당신의 등에 불을 붙여보라”…그렇게 30년을 달렸다

입력 2015-07-2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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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완 솔브레인 회장

기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3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의 삶을 기업가로서 정신 없이 보내고 있으나 막상 학창 시절에는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학창 시절에는 운동을 좋아하고 또 잘하기도 하여 잠시나마 운동선수를 꿈꾸기도 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축구도 하고 농구도 같이할 수 있는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랬던 내가 자신만의 사업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과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들어가 관리직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그러면 또래들이 부러워할 만한 급여 수준에 시간이 지나면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당시 10·26과 5·18 등 시대적인 상황으로 취업 환경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매년 대기업에서 수천명씩 뽑던 신입사원 채용도 이 해에는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려 당시 졸업생들 스스로 저주 받은 학번이라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할 정도였다. 이 무렵부터 대부분의 동기들처럼 무난하고 위험이 없는 직장인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닌, 사업가가 되는 나를 상상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없지 않은 듯하다. 아버지는 공무원을 하셨는데 정해진 벌이에 많은 식구를 부양하다 보니 어머니께서 가정 살림에 도움이 되고자 작은 일이나마 항상 무언가를 부지런히 하셨다. 그러다 보니 때에 따라 집이 노끈공장이 되기도 하고 연탄공장이 되기도 하였다. 아마도 어머니께 물려받은 타고난 성격이 다른 사람들처럼 주어진 일만 하며 안정적으로 살아가게 놔두지 않는 듯하다.

나만의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 준비로서 무역상사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당시 사업가로서 야망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무역업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었다. 특히 무역업은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으니 맨손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적합하기도 하였다. 무역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입사한 무역회사에서는 단순히 수출입 업무만 배운 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반도체라는 것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나 스스로가 했지만 반도체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 때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나에겐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성장하였으나 당시만 하더라도 반도체 시장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부족하였으며 회사의 누구도 반도체 관련 사업을 눈여겨 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덕에 남들보다 일찍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산업에 대한 이해도 빨랐으며 관련 업무를 하면 할수록 반도체가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결국 기업가로서의 출발은 반도체와 관련한, 특히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반도체 케미칼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약 4년 반 직장생활을 하며 기본적인 업무 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며 시기적으로도 국내에서 반도체 시장과 기술이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하던 무렵이어서 미련 없이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테크노무역이란 개인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회사를 설립하고 초창기 상황이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바쁘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수익이 전혀 없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무실 경비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중에서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확신만은 변하지 않았으며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적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매출을 올리기 위하여 동분서주 사무실이 있던 여의도에서 반도체 공장이 있던 부천, 기흥, 이천 등을 매일 같이 쭉 돌고 오면 하루에 3백km 이상을 운전하기가 예사였으며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렇게 반도체 업체를 찾아다니며 반도체와 관련한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반도체 장비 등을 물색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 반도체 케미칼 사업에 그 목표가 있었으나 이제 막 출발한 조그만 무역상 입장에서 바로 케미칼 사업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반도체 장비사업을 통하여 회사의 기초 체력을 다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렇게 1~2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반도체 업체에서 관련 제품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고 반도체 시장도 성장함에 따라 사업도 서서히 본궤도에 올라서게 되었다. 반도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사업에 뛰어든 것이 역시나 적중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여가 지나서는 회사의 규모도 확장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반도체 케미컬 제조업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반도체 케미칼을 수입에 의존하던 시기여서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안하고 있던 일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도 있었고, 그 꿈이 현실이 된다면 개인의 성공을 넘어 국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으니 열망은 점점 더 간절해져 갔으나 무역업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리다 보니 막상 실행으로 옮기고 있지 못하였다.

이때, 내 목표를 위하여 나가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당신의 뒤에 불을 붙여 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불에 데지 않으려면 앞만 보고 뛰어야 하니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라는 의미였다. 사실 당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의 사업 환경이 수월하지도 않았으며 무역업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보니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내가 갖고 있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으며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결국 나를 제조업으로 이끌게 되었다.

물론 제조업으로 사업을 확장한 초창기에는 무역업을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을 겪고 훨씬 더 큰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 아무런 기반시설이 없는 지역에 공장을 올리는 일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단 한가지도 쉬운 과정은 없었던 듯하다. 그중에서 특히 어려웠던 것은 고객으로부터 우리 제품에 대한 신뢰를 얻는 일이었다. 아주 미세하게 진행되는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반도체 제조를 위해 이용되는 케미칼 소재 역시 초고순도 제품이어야 하며 이를 반도체 업체로부터 검증 받는 과정도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 필요성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었으나 막상 국산화된 제품을 사용하는 데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들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 지 1년여 넘게 실제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상당한 규모의 적자가 누적되어 가고 있었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던 배경에는 우리 손으로 반도체 케미칼을 국산화하였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있었다. 무역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반도체 업체를 찾아 다니며 문을 두드린 결과 조금씩 당사의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한 데 대한 업체들의 높은 평가가 맞물리며 회사는 제조업체로서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내게 된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원동력 중의 하나는 도전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남들처럼 대기업의 엔지니어가 되는 길을 선택하였다면 아마도 기업인 정지완은 없었을 것이다. 무역상사를 다니던 무렵 남들보다 조금 더 그 능력을 인정받는 데 도취되어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직장인으로서 이미 정년을 맞이하였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반도체 무역상으로 만족하였다면 아마 대한민국 IT산업에 작게나마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반도체 재료 제조를 시작하면서 회사가 성장하였으나 거기서 도전을 멈추었다면 회사의 규모는 지금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을 듯하다.

회사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었던 시기는 90년대 후반이었는데 반도체 위주의 사업 구조에서 LCD용 소재로 사업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80년대 후반 반도체 산업이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90년대 후반에는 LCD산업이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다각도로 시장을 검토하고 고민한 결과 LCD산업도 반도체 산업이 그러하였듯이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또 한번 도전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산업에서도 현재 솔브레인이 중요한 기업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R&D투자, 신규 법인 설립 등을 통하여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여 나갔는데 이러한 도전이야말로 현재 3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지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닐 수 없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IT산업은 워낙 기술의 변화, 시장의 변화가 빨라 그 특성상 어제까지 승승장구하던 기업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작은 기업에만 이런 위험이 도사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노키아의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며 국내에서도 그러한 예를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멀리 돌이켜볼 필요도 없이 최근에도 초일류 기업이니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기업이니 칭찬 받다 산업의 변화, 기술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한순간 도태된 예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잠재되어 있던 위협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기업에 있어서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아닐까 싶다. 특히 세계를 무대로 시시각각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IT시장에서야말로 변화와 이를 위한 도전이 없으면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담보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도전의식은 회사의 경영자만 갖고 있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회사 전체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항상 직원들에게 새로운 것에 도전할 것을 부탁하고 있으며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도전하는 직원을 높이 평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도전한다고 항상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혹은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데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투자가 소요되곤 하는데 그때마다 직원 개개인에게 성공을 강요하거나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회사의 성장을 위하여 과감히 도전하고 밤낮없이 이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직원들이 고맙기 때문이다. 단, 이때는 반드시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을 준수해야만 한다. 원칙을 지키고 기본에 충실한다면 어떠한 리스크가 발생해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리스크에 대한 책임은 경영자의 몫일 것이다. 또한, 내가 경영자로서 해야 할 많은 일들 중 하나는 도전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으려는 직원들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아닐까 싶다.

회사의 사명을 지난 2011년 9월 테크노세미켐에서 솔브레인으로 바꿨는데 이러한 사명 변경을 통하여 회사가 언제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것이란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아마 많은 분들이 솔브레인이란 사명을 들으면 뭘 하는 회사일까 궁금해할 듯 한데 솔브레인은 ‘기술과 감성, 상상과 실현 등 이질적이지만 공존할 때 더욱 강력해지는 역량의 결합’을 의미한다. 애플과 같이 산업의 변화,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창의적인 기업으로 솔브레인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사명에 담았다.

작은 무역회사로 시작하여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춘 기업으로 일구기까지 약 30여년의 시간을 나름 부지런히 달려왔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고 안주할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기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기업을 통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최고의 만족이자 최종적인 목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도 회사의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회사를 위하여 헌신하고자 한다. 우리 회사가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 대한민국에서 제일의 기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우리 회사가 먼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아가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회사가 되었으면 하며 오늘도 그 목표를 위하여 새로운 꿈을 꾸려고 한다.

◇정지완 회장 프로필

1956년 11월 9일 출생(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1986년~현재 솔브레인㈜ 경영

2013~2014년 코스닥협회 회장

◇솔브레인 연혁

1986년 5월 테크노무역상사 설립

1991년 4월 공주공장 완공

1996년 12월 연매출 100억원 돌파

1998년 4월 LCD제조용 Etchant 공장 완공

1998년 11월 1000만달러 수출탑 수상

1999년 10월 테크노세미켐으로 사명 변경

2000년 1월 코스닥 상장

2002년 6월 CMP Slurry공장 완공

2002년 11월 2차전지 전해액 공장 완공

2006년 12월 연매출 1000억원 돌파

2007년 6월 엠씨솔루션 설립

2009년 3월 솔브레인이엔지 인수

2010년 1월 솔브레인MI 설립

2011년 9월 솔브레인으로 사명 변경

2013년 9월 솔브레인나눔재단 설립

2014년 4월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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