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2>독일 ‘본 여성박물관’

입력 2015-07-21 11:01수정 2015-09-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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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예술혼 기리고 길러온 ‘세계 여성박물관 1번지’

▲칸딘스키 작 ‘가브리엘레 뮌터’
독일의 표현주의 여성화가 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는 베를린에서 태어나 1901년 뮌헨에 정착했다. 이듬해 ‘추상미술의 아버지’, ‘청기사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를 만났다. 사제관계였던 남녀는 이내 연인 사이가 됐다. 유부남이었던 칸딘스키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헤어질 때 “다시 만나면 결혼하겠다”며 러시아로 돌아갔으나 다른 여인과 재혼했다.

로댕의 제자이며 애인이었으나 그에게 배신당하고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친 카미유 클로델처럼 뮌터도 고통과 절망이 컸다. 그러나 그녀는 40여 년간 혼자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특히 칸딘스키의 작품을 나치가 몰수하지 못하게 지하실에 깊이 숨겼다가 뮌헨의 렌바흐하우스미술관에 기증해 이곳을 세계적 명소가 되게 했다. 칸딘스키와 뮌터가 함께 산 집은 뮌헨 근처 무르나우(Murnau)에 있었다.

▲본 여성박물관의 정면. 바람에 날리는 천은 어린이들의 작품이다.
본 여성박물관(http://www.frauenmuseum.de/)은 이 선구적 여성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1994년부터 40세 이상의 뛰어난 여성 예술가를 선정, 3년마다 상금 2만 유로(2500만원 상당)의 ‘가브리엘레 뮌터’상을 수여해왔다. 그런데 2010년 이후 시상이 중단된 채 5년이 다 돼가고 있다. 2003년에 열려야 했던 제4회 시상식도 한 해 늦춰진 적이 있지만, 시 정부의 지원이 아예 끊긴 것이다. 본 여성박물관은 지금 2017년 제7회 시상을 목표로 재원 확보를 추진 중이다.

본 여성박물관은 1981년에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여성박물관이다. 30여 년간 세계의 여성박물관운동을 선도해온 ‘1번지 박물관’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년에 6만 유로(7500만원 상당)는 필요한데, 시에서 지원하는 금액은 지난해의 경우 66%나 삭감됐다. 개별 전시 지원 외의 지원은 없다. 3층에 3000㎡ 규모의 이 박물관은 운영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연평균 20회의 전시를 열고, 아틀리에를 빌려주고, 카페와 뮤지엄 숍,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후원자는 400여 명. 매년 50유로(6만여원)를 하한선으로 기부를 받으면서 후원자를 늘려가는 중이다.

▲그동안의 활동을 담은 각종 자료.
본 여성박물관은 여성의 역사적 현재적 예술과 문화를 보전·진흥하고, 여성에게 독자적 전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그동안 미술사에서 통용돼온 남성 중심적 기준을 지양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여성박물관 건립과 조성은 1970년대 제2차 페미니즘 운동과 관련이 깊다. 여성운동가들은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여성운동의 하나로 박물관 건립을 기획했다. 그 효시가 ‘여성이 도시를 만든다’는 예술그룹을 운영해온 미술가 마리안네 피첸(67)이 주창해 만든 본 여성박물관이다.

▲피첸 관장과 남편 호르스트 피첸.

본 여성박물관은 개관 이후 34년간 5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이곳 콜렉션에는 독일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쾨테 콜비츠, 사진가 카타리나 시버딩, 오노 요코 등의 작품 1000여 점이 있다. 그동안 여성예술에 관한 리포트 1만여 건을 냈다. 2009년 6월 7일~7월 12일에는 한국 현대미술 독일전 한지 비엔날레가 ‘마지막 장벽’을 주제로 한국 여성작가 45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박물관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본의 경우 낡은 포목점 건물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시 당국이 1981년 여름 한 철 한시적으로 사용토록 허가한 곳을 여성들이 비합법적으로 버티며 차지했고, 시 의회는 결국 3년이 지나서야 임대계약서를 써주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본 여성박물관보다 3년 늦게 설립된 독일의 비스바덴 여성박물관은 낡은 공장이었다. 퓌르트-부르크파른바흐의 박물관은 낡은 마굿간에서 시작됐다. 이탈리아 메라노박물관은 장신구 박물관으로 출발해 지금은 그 지역의 문화센터로 자리 잡았다.

▲‘전쟁과 평화 속의 여성’전에 출품된 헬렌 에스코베도(멕시코·1934~2010))의 ‘난민들’. 4월 19일 개막된 이 전시는 11월 1일까지 열린다.
본의 출발은 세계의 여성운동가들에게 자극을 줘 각국에서 여성박물관이 점차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2008년 메라노에서 처음 개최된 국제 여성박물관대회(IWMC)는 이어 독일 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호주 엘리스 스프링스 등지에서 계속 열렸고, 현재 2016년 6차 대회를 준비 중이다. 1차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확인한 공동의 목표는 ‘여성의 지식 역사 예술을 문서화(수집 기록 보급)하며 젠더의 역사를 문서화한다’는 것이다. 2012년에는 국제여성박물관협회(IAWM)도 결성됐다.

▲‘전쟁과 평화 속의 여성’에 출품된 바바라 두이스베르크 작 '스몰렌스크'. 1943년 러시아군이 독일군을 이긴 이곳 전투에서 훈장을 받은 여성들의 모습을 재현했다.

본 여성박물관은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전쟁과 평화 속의 여성들’이라는 주제의 대규모 전시회를 열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하고도 핍진하게 전쟁의 참상과 여성들의 수난을 묘사하고 재현해냈을까 싶을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 많다. 전시도 훌륭하지만 200쪽에 가까운 카탈로그도 내용이 알차고 풍부하다. 30년을 넘은 박물관의 경륜과 구성원들의 협력을 읽을 수 있는 자료다.

▲‘전쟁과 평화 속의 여성’전 포스터.

▲피첸 관장의 작품. 여신의 모습을 변형해 재창조했다.

▲본 여성박물관의 매점.


[여성이 역사를 낳는다-세계 여성박물관 현지 취재] <2> 인터뷰- 본 여성박물관장 '마리안네 피첸'

여성박물관 건립은 남성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얻어내야

▲마리안네 피첸 관장. 조형물 맨 오른쪽 여신의 헤어스타일을 재현했다.

본 여성박물관 마리안네 피첸 관장의 머리는 한마디로 좀 심란해 보인다. 그 머리는 본 지역에서 발굴된 로마시대 세 여신의 조형물(서기 162년경)을 본뜬 것이다. 피첸 관장은 이 헤어스타일을 30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다. 조형물은 1928년 교회 터에서 발굴됐는데, 피첸 관장은 본 여성박물관에 복제품을 설치하고 여신의 모습을 자신의 작품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본 지역 여성, 나아가 독일 여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그녀의 역사는 본 여성박물관의 역사다. 1948년 본에서 멀지 않은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1969년부터 창작활동을 해왔다. 1972년부터 3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50여 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남편 호르스트 피첸과 함께 1971년에 창립한 갤러리가 지금은 ‘예술과 조각협회’로 발전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정년퇴직 후 아내를 성실하게 도와 모든 활동과 자료의 문서화 작업을 도맡고 있다.

피첸 관장은 몽골 중국은 다녀왔지만 아직 한국에는 와본 적이 없다. 가능하다면 한국과의 교환전시도 하고 싶다고 한다.

여성(사)박물관을 새로 지으려 하는 한국에 대해서는 1)남성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얻어낼 것 2)언론 홍보에 주력할 것 3)지속적으로 여성의 문제를 토론할 것 4)과거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일을 미래와 연결되게 할 것 5)고정된 주제에 얽매이지 말고 끊임없이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할 것, 이 다섯 가지를 조언했다.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특별취재반>

임철순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민태성 부장(전 뉴욕특파원)

김윤경 기획취재팀 부장

김민정 기획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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