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필름 끊긴 상태,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와 다를 수 있어 준강간 성립 안 돼

입력 2015-07-13 11:04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얼마 전 법원은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자신의 행동을 기억 못하는 상태였다고 해도 이를 심신상실 상태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필름’이 끊긴 상태였다고 해도 이를 준강간죄의 요건인 심신상실 상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A씨는 밤 10시경 행인들에게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만취한 여성 B씨 등 2명을 만났다. 당시 B씨는 친구와 둘이서 소주 6병을 나눠 마신 상태였다. 이들은 A씨와 함께 술을 더 마시고 노래방에서 함께 어울렸다. 이후 A씨와 B씨는 모텔로 갔고 B씨는 걷다가 구토를 하거나 비틀거렸으며 모텔 입구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모텔에서 이들은 한차례 성관계 후 또 한차례 관계를 하려다 술이 깬 B씨의 완강한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B씨는 A씨를 준강간 및 강간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재판에서 B씨는 “소주를 다섯병째 시킨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술집과 노래방에서 나와 모텔까지 가게 된 일이나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물이 든 욕조에 옷을 벗은 채 누워있었고 옆에 A씨가 옷을 벗고 있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1심에서는 “A씨는 만취한 B씨의 항거불능 또는 심신상실 상태를 이용해 B씨를 간음했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11부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2014노3517)했다. 재판부는 “B씨가 만취해 피해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A씨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B씨가 스스로 모텔 객실로 걸어 들어가는 CCTV 장면 등을 통해 “B씨가 스스로 욕조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가능성도 적지 않고, 의식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행동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B씨가 의식 있는 상태에서 성관계에 응했다는 A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A씨가 성인 남성 무릎 높이가 넘는 욕조를 넘어가 B씨를 눕히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며, 만취한 상태의 B씨를 침대에서 간음한 뒤 굳이 욕조로 데리고 들어갈 이유도 없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와 같은 판례에 대해 법무법인 더쌤의 김광삼 대표변호사는 “법원이 이와 같은 판결을 내린 데에는 피해자가 의식이 있을 때 한 일을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는 일시적 기억상실증인 ‘블랙아웃(black out)’ 증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블랙아웃’이란 알코올이 뇌의 활동을 방해해 정보의 입력과 해석 등에 악영향을 주지만, 뇌의 다른 부분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말한다. 아울러 김광삼 변호사는 “위 판결은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성관계 당시 피해자에게 의식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면 술이 깬 후 당시 상황을 기억 못한다는 이유로 심신상실 상태에 빠져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이 피해자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간음하는 것에 반해 ‘준강간’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을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서 강간의 예에 의해 처벌된다. 여기서 ‘심신상실’이란 약물이나 술 등으로 인해 심리적인 판단력이 흐트러졌을 때 오는 장해를 말한다.

이에 대해 김광삼 변호사는 “문제는 이러한 장해가 일시적이었다고 해도 피해자가 신고를 하게 되면 피의자는 강간죄와 동일하게 처벌을 받는다”면서, “준강간 혐의를 받는 피의자는 무엇보다 피해자가 성관계 당시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이 아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성폭력범죄는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을 경우 20년간 신상정보가 등록되고 심할 경우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 명령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수사 초기단계에서부터 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김광삼 변호사는 “게다가 암묵적인 합의 하의 성관계일지라도 준강간죄 혐의로 기소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수사 초기 경찰조사에서 잘못 진술할 경우 번복이 어렵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으므로 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경찰조사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김광삼 변호사는 성폭력이나 준강간 사건들에서 억울하게 고소를 당하거나 혐의를 뒤집어쓴 피의자나 피고인을 위해 억울함을 벗길 수 있도록 입증하여 무혐의나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많다.

억울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백 건의 성공사례로 이 분야 전문변호사로 손꼽히고 있는 김광삼 변호사는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수원지방검찰청, 전주지방검찰청 등을 비롯하여 7년여 동안 검사로 재직한 후 현재 법무법인 더쌤(www.thessam.biz)의 대표변호사로서 대한변호사협회에 형사법과 교통사고 분야 전문변호사로 등록된 전문변호사이다. 또 KBS, MBC, SBS, YTN, TV조선, MBN, JTBC, 채널A, 연합뉴스 Y 출연 및 패널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