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은평천사원’은 1959년도에 전쟁고아를 위해 설립된 곳이에요.” 조성아 원장의 설명을 들으며 아이들이 머무는 집에 기자들이 들어섰다.
은평천사원에는 총 6개의 집이 있다. 각 집에는 저마다 널찍한 거실과 부엌, 화장실이 있고 4~5개의 방이 딸려있었다. 거실에는 피아노, 전자레인지, 정수기, 냉장고, 밥솥, TV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베란다에서는 손바닥만 한 아이들의 팬티가 일렬로 늘어져 볕을 기다렸다. 방에는 아이들이 꿈을 꾸는 2층 침대와 꿈을 적어가는 책상, 형형색색의 책가방이 놓여 있었다.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었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아가집’에는 6개월부터 돌을 갓 지난 아이들 15명이 살고 있었다. 육아에 자신 있는 ‘엄마 기자’ 6명이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다가갔다. 그러나 쉬울리 없다. 혼자 방에 뒹굴며 놀고 있던 14개월 지민이(이하 가명)가 낯선이의 방문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곧 이어 순식간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방으로 몰려들더니 함께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느냐”고 물어도 묵묵부답. 이 와중에 12개월 윤희는 혼자 꿋꿋이 코끼리 시소를 탔다.
‘다윗집’에는 남자아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현관에는 4살 민욱이와 진서가 잠자리채를 들고 통행자 검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항복”을 외쳐도 민욱이는 자꾸 “빵야”를 외쳤다. 함께 사는 민재와 장성이는 보이지 않았다. 민재와 장성이를 찾아 들어간 옆집은 여자아이들이 사는 ‘에스더집’. 시끄러운 ‘청소반 기자’들을 피해 한 방에 모여 만화를 보고 있었다.
“엘사가 나오는 ‘겨울왕국’이냐?”고 묻자 여섯 살 예은이가 살짝 눈을 흘겼다. 예은이가 “이 만화는 ‘바비와 비밀의 문’”이라고 기자들의 무식함(?)을 훈계하자, 예은이와 똑같이 생긴 언니 예원이와 예진이의 웃음이 터졌다. 세 공주가 엘사나 바비보다 예뻤다.
민재와 장성이는 큰 남자아이들이 사는 ‘평강집’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언뜻 보니 6학년 진수가 챙겨준 과자와 아이스티를 먹고 있는 듯했다. 나중에 민재에게 물으니 불닭을 먹었다고 했다. “맵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맛있다”고 답했다. 말투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불닭을 좋아하는 민재는 열 살이다.
기자들이 은평천사원을 방문한 6월 27일은 ‘아가방’ 혁수, 윤희, 지은이의 돌잔치가 있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음식반 기자’들이 분주히 만든 김밥 앞에 돌을 맞은 아이들이 앉았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혁수는 턱시도를 입고 늠름함을 뽐냈다. 코끼리 시소를 좋아하는 윤희는 분홍색 꽃 드레스를 입고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고 앉았다. 영락없는 숙녀였다. 낯을 가린다는 지은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인상을 썼다. 울음을 터뜨릴까, 얼른 고개를 돌렸다.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조용했던 식당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큰 언니들은 볼에 연지곤지를 찍고 내려온 ‘아가방’ 아이들을 하나씩 데려다가 무릎에 앉혔다. 이날 돌잔치에서 혁수는 판사 망치를 잡았고, 윤희는 연필을 잡았다. 낯을 가리는 지은이는 대범하게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이 장면은 모두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찍혀 은평천사원에 전달됐다.
조 원장은 “아이들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자립시켜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은평천사원이 생긴 목적”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이 지나면 혁수는 아내와 아들의 손을 잡고 이곳을 다시 방문할까. 그때쯤이면 혁수의 아들이 망치를 든 아빠 사진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