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너 님이나 잘하세요”

입력 2015-06-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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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산업국장

얼마 전 가까운 친구와의 일이다. 바쁘고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약속 몇 가지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실수한 것을 놓고 필자가 “왜 그러느냐”며 지적하자, 바로 돌아온 말이 있다.

“너 님이나 잘하세요.”

오래전 은행에서 유행한 ‘너나 잘하세요’에 의존명사 ‘님’만 붙인 표현이었다. 왠지 자신의 우월감을 반영하는 말투여서 기분이 나빠지는 말이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친구였기에 반농담으로 던졌을 터이지만, 필자 역시 뾰로통해졌다. 바른 대화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요즘 세태를 보면 이 말이 목젖까지 치밀고 올라온다.

#최근 재계의 핫 이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딴지를 걸고 있는 엘리엇 매니지먼트다. 엘리엇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벌처펀드의 우두머리 격이다. 7000억원을 투입한 뒤, 이런저런 꼼수로 몇 배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엘리엇의 속셈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도 ‘주주권익’을 위한다는 ‘양의 탈’ 같은 주장에 일부가 솔깃하고 있는 현실은 삼성이 투명한 정도경영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이번 엘리엇의 공격을 반면교사 삼아 대기업들이 ‘집중과 선택’을 통해 지배구조를 탄탄히 하고, 주주들을 기반으로 하는 공개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국내 반재벌 정서를 자극, 세(勢)를 규합하려는 엘리엇의 교묘한 전략이 대기업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안겨준 셈이다.

그렇다고 엘리엇의 야욕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직시해야 한다. 엘리엇은 미국의 석면회사 오웬스코닝, 제너럴모터스의 자회사 델파이는 물론, 아르헨티나와 페루 등을 대상으로 수천억원 이상 벌어가는 과정에서 인권이나 국가 부도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주주권익’을 표방하지만, 주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위 사례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칫 실수할 경우 엘리엇은 수천억원, 아니 수조원에 달하는 돈을 우리나라에서 빼 갈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엇에게 하고 싶은 말. “‘주주권익’ 외치면서 먹튀할 생각말고, 너 님이나 잘하세요.”

#면세점 전쟁도 후끈 달아오른 관심사다. 7월 서울 시내 면세점 선정을 앞두고 대기업군에서 7곳이 티켓 2개를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중견·중소기업군에서는 1개 티켓에 14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후보 업체들의 대관(對官)팀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물론, 경쟁사간 비방전도 요란하다. 상대 회사의 약점을 기자들에게 슬쩍 흘리는가 하면, 증권사 애널리스트까지 끌어들여 평가보고서를 내놓았는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관세청은 이미 면세점 심사에 추호의 의구심 없는 공정한 심사를 약속했다. 약속이 제대로 이행될지는 나중의 문제이고, 실무자로선 면세점 심사 기준에 맞게 더 충실하게 준비하는 것이 높은 점수를 받는 지름길이다. 상대방을 헐뜯는 데 혈안이 된 기업들에게 “너 님이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다.

#요즘 정치 상황은 “너 님이나 잘하세요”가 절로 나온다. 메르스 여파로 경기가 가뜩이나 쭈그러들었는데, 청와대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로 국회에선 줄서기·눈치보기만 횡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경기를 살리는 법안이나 대책 마련은 완전 뒷전이고, 국가 경제는 갈수록 시름시름 앓고 있다. 당·청 간의 갈등은 그렇다 하더라도, 여·야 모두가 경제는 벌써 잊어버린 듯하다. 그러면서 줄서기에 나서려고 한마디씩 하고 있으니, 정말 “너 님이나 잘하세요”다.

독자들은 이 글을 보고 오히려 “너나 잘하세요”를 내게 던질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내 탓이오”를 외치지 못할망정 남을 탓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다. 그러나 “너 님이나 잘하세요”라고 했다고 해서 남만 탓하는 게 아니다. 어려워진 경제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고자, ‘나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실제로 어느 선배가 필자에게 “너만 열심히 하면 다 잘될 거야”라고 했던 말은 옳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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