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숙, 누가 그녀의 연기에 감동하지 않으랴 [배국남의 스타탐험]

입력 2015-06-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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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롤모델이며 정말 함께 연기하고 싶은 선배 연기자는 김해숙 선생님입니다” 18일 개봉을 앞둔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의 주연 박보영이 최근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왜 그런지는 요즘 시청자와 만나는 MBC 주말극 ‘여자를 울려’한회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버렸던 딸 덕인(김정은)에게 왜 자신을 버렸느냐고 다시는 자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죽을 때는 너를 위해서 죽겠다”며 눈물 쏟고 걸어가는 화순(김해숙)의 들썩이는 뒷 모습에서도 자식을 버린 어머니의 자책의 감정이 오롯이 살아 있다. 6월13일 방송분이었다. 이처럼 뒷모습에서도 감정연기를 살려내는 연기자가 바로 김해숙이다.

송강호 김윤석 김혜수 전도연 하정우…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관객들이 ‘믿고 보는 배우’라는 점이다. 빼어난 연기력과 스타성으로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뛰어넘는 ‘믿고 느끼는’배우가 있다. 김해숙(60)이다. 그녀는 연기력 하나로 수많은 이들에게 전율과 감동을 전해준다. 그녀는 개연성이 없고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의 캐릭터마저도 팔색조 연기로 생명력과 진정성을 불어넣어 시청자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명배우다.

우리 방송가와 영화계에선 여배우가 40대만 넘어서도 주연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이 고정된 풍경이다. 수십 년 견고하던 이 모습이 김해숙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김해숙은 우리 방송가와 영화계에 의미 있는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중견 여자 연기자 중 식사 장면에만 등장하는 ‘밥상용 배우’로 전락하는 경우가 일반화된 영화와 드라마에서 김해숙은 영화 ‘도둑들’‘깡철이’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처럼 당당하게 주연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50대 후반인데도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주연 출연과 활동 작품 수 같은 외형적인 부분만으로 김해숙을 평가할 수 없다. 양극단의 캐릭터, 다양한 장르의 작품, 일상성과 특수성을 오가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내적인 부분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자가 바로 김해숙이기 때문이다.

김해숙은 우리 시대 최고 연기력을 가진 그래서 수많은 시청자와 관객이 ‘보고 느끼는 배우’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배우다. 중견 연기자 이순재는“김해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연기를 하는 연기자”라는 찬사를 했고 ‘왕가네 식구들’에서 함께 연기한 젊은 배우 이윤지는“김해숙 선생님 같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 제 꿈이자 목표다”라고 말한다. 연기자와 시청자, 관객이 최고 연기자라는 평가 하는 부분에 대해 김해숙은“실감이 안 난다. 한 곳만 쭉 바라보고 열심히 했지만 과연 내가 이런 말을 들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해숙은 1974년 MBC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한 이래 KBS, MBC, SBS 방송 3사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팔색조 연기를 보여 왔다. 나이 들어갈수록 김해숙의 연기력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출중한 연기력과 연기 스펙트럼의 확장과 진화는 오롯이 땀과 노력의 산물이다. “연기자로서 필요한 목소리를 가지려고 담배를 피웠다”는 김해숙의 말에서 연기력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노력의 문양을 엿볼 수 있다.

김해숙의 가장 강력한 힘은 TV화면과 스크린 너머의 시청자와 관객에게 캐릭터의 진정성과 연기의 생명력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다. “많은 분이 연기 비결을 묻는다.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말을 들을 때 할 말이 없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비결은 없고, 배우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배우는 항상 새로워야 한다는 것과 내가 나를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여자 연기자 대부분은 잠자는 장면에서도 일상생활과 달리 화장을 예쁘게 하고 나온다. 작은 부분이지만 리얼리티를 크게 떨어트린다. 그런데 잠자는 장면에서도 화장기 하나 없는 민낯으로 작품과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는 이가 바로 김해숙이다. 그런 자세가 오늘의 김해숙을 만든 것이다.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다른 배우들 역시 그럴 것이다. 다만 작업환경 때문에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날 새기는 기본이고 하루 15~18시간 작업을 해야 하기에 젊은 배우들도 드라마 한편을 소화하기 힘들 정도다. 김해숙은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그것도 2~3개 작품을 동시에 출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작업량이다. “하루만 쉬어주면 짱짱해진다. 오히려 쉬면 더 힘들어지고 일 안 하면 몸이 아프다. 골프 못 치는 배우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이쪽 일을 더 열심히 못하게 될 것 같아 골프를 안 친다.” 연기에 대한 준비와 연습, 그리고 촬영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골프마저 하지 않는다는 그의 자세가 명품 연기를 만드는 진정한 원동력이다.

나문희, 김혜자, 그리고 고두심에 이어 시청자와 관객으로부터 ‘국민 엄마’타이틀을 얻은 이가 바로 김해숙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선 속정 깊고 의연한 엄마, ‘왕가네 식구들’에선 속물근성을 보이는 엄마, 영화 ‘깡철이’에선 순진무구한 바보 엄마를 소화한 것처럼 스펙트럼이 광대한 엄마 캐릭터를 소화한다.

나문희 김혜자 그리고 고두심 등 그동안 국민 엄마 타이틀을 얻은 명배우들은 단일한 특성과 이미지의 어머니 색깔을 유지했다. 넉넉한 나문희, 자비로운 김혜자, 그리고 강인한 고두심 등등. 하지만 김해숙은 다르다. 억척 엄마에서부터 따스한 엄마, 바보 엄마까지 양극단을 오가는 어머니 캐릭터를 맡아 생명력을 불어넣어 시청자와 관객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받고 있다.

“‘국민엄마’란 호칭은 무척 영광스러워요.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위대한 연기는 바로 엄마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를 표현하는 것이 내 연기의 목표에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엄마 연기가 어렵고 책임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다양한 엄마를 연기로 들어내는 연기자의 삶 자체가 아주 좋아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빈, 이윤지, 유아인 등 그녀의 자식으로 나온 스타들은 작품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는 드라마 속 엄마처럼 스태프와 동료 연기자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김해숙 선생님은 뵐 때마다 제게 한결같이 ‘밥은 먹고 다니니’라고 챙겨주신다. 내겐 그렇게 말을 건넬 때마다 진심이 느껴져 너무 따스함을 느끼곤 한다. ‘우리 형’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 빈이’ 하며 아껴주시고 힘든 일 있을 때 제일 먼저 걱정해주시는, 제게는 어머니 같은 선생님이다”는 원빈의 말은 김해숙의 화면 밖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해숙에게도 죽음마저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사업 실패 후 거의 바닥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복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빚이 너무 많아 40대를 빚을 갚는 데 소비했다”는 김해숙은 연기를 할 수 있어 삶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올해로 연기생활 41년째다. 연기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일까.“정말 힘들었던 것은 제 나이하고 싸울 때다. 제 안에 있는 배우로서의 욕망은 너무나도 큰데, 정작 제가 해야 하는 건 제한돼 있다.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그것의 탈출구를 만들어준 게 영화였다. 자괴감에 빠져서 이럴 때가 아니고 내가 뭔가 나만의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영화를 하면서 느꼈다. 영화를 통해 배우로 다시 태어나는 ,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무방비 도시’‘박쥐’ 등 영화를 하면서 제 안에 있던 수많은 열정과 목마름을 표출하며 나이와 배역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때로는 환호와 열기, 때로는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고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시선의 중앙에 선 연기자로서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을까. “후회는 없던 것 같다. 제가 음악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제 꿈이었는데 연기도 예술의 한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슷한 길을 가는 것 같다. 후회는 없다.”

김해숙은 김수현 같은 최고 작가, 윤석호 같은 최고의 PD, 박찬욱 최동훈 등 최고의 감독 캐스팅 1순위다.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 “항상 뒤집어서 생각한다. 그분들이 저란 사람을 인정을 해주시고 찾아주시는 것에 고마움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최선을 다한다.

매번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연기한다.”그녀답다. 그녀는 말한다.

“연기를 계속하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하고 싶은 배역은 너무 많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들이 들어올까에 여전히 설렌다.”시청자와 관객 역시 다음에는 김해숙이 어떤 모습으로 감동과 전율을 선사할까에 여전히 설렌다. 그리고 그녀의 연기로 어떤 떨림과 감동을 느낄까 기대한다. 김해숙은 보고 느끼는 배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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