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국회법 개정은 민주주의 실패

입력 2015-06-0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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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권 자유경제원장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까지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으로 인해 민주주의 체제의 흔들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짧다. 1948년에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했으므로 67년 된 제도다. 서양의 오래된 역사와 비교할 때,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체제를 갖춘 것도 대단하다. 그러나 이번 국회법 개정은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를 흔들어 놓는 심각한 왜곡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대통령의 권력 제한으로 발전되었다. 과거 군사정부 동안에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방향을 민주주의 발전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 대통령의 권한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모든 체제 변화에는 비용이 따른다. 대통령의 권한 약화는 자연스럽게 국회권한 강화로 연결되었다. 이제 국회는 국민의 활동을 제한하는 법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합법화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도 없어져 이제 국회 권한은 절대적으로 응고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급기야 행정부의 고유권한인 시행령 등을 국회가 마음대로 고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우린 민주주의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다수결로 결정하면, 어떤 법이든지 합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합법적임을 판단하는 가치 기준은 다수결 등 의사결정 방법에만 집중한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이념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자유와 인권’이다. 이를 지키는 수단으로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민주주의 제도로 수렴하였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한 제도다. 따라서 그 사회가 민주주의 제도를 조심스럽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국민들의 고유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오래전 플라톤은 가장 이상적인 정치구조로 민주주의가 아닌,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겐 나쁜 제도인 독재 정책을 주장한 것이다. 그만큼 민주주의 정치는 제대로 정착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용어 번역부터 잘못되어 민주주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영어표기는 ‘democracy’ 이며, 사상을 나타내는 ‘ism’이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제도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르다. 민주제도는 절대적인 사상을 의미하지 않고, 그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나타낼 뿐이다. 권력을 나누어 가져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나쁜 독재자로 인한 사회적 폐단을 줄이려는 제도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현명한 정치인이 항상 존재한다면, 철인독재가 정치운영 비용을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제도다. 그러나 한번 악한 독재자가 나타날 경우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높으므로, 이제 대부분 국가들은 민주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제도를 제대로 해석하고 수선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다수결로 통과하면 어떤 법이든지 법이 될 수 있다는 형식적 논리로 민주제도를 숭배해선 안된다. 민주제도는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제도이므로, 거꾸로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어떤 법도 민주제도 하에서 통과되었지만, 비판받아야 한다. 그래서 일찍이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민주제도의 오용 가능성을 ‘무제한적 민주제도(unlimited democracy)’라고 설명했다. 이번 국회법 개정은 한국에서 무제한적 민주제도가 발생한 좋은 예이다. 대통령 권한을 침해하고서도 국회가 떳떳한 것은 민주제도의 절차과정을 통과했다는 해석 때문이다. 외형적 민주제도 과정에 집착하면 할수록, 국회 권력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민주제도 실패’로 귀결된다.

한국의 민주제도 역사는 짧다. 이번 국회법 개정은 민주제도에 대한 본질을 논의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 변화 없이 절대적 신으로 숭배하게 되면, 한국은 민주주의로 인해 오히려 경제 퇴보와 갈등의 시대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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