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중국몽(中國夢)과 한국몽(韓國夢)

입력 2015-05-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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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믿을 만한 분이 중국 기업에 윤리경영 자문을 해 주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국제투명성기구 청렴지수가 100위가 될 정도로 부패가 심한 국가다. 국가 차원의 개혁과 캠페인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개별 기업이 스스로 윤리경영 자문을 받는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말이 재미있다. 우리 기업보다 더 잘 먹힌다는 거다. 국내외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결국 돈이 되고 경쟁력이 된다는 사실을 더 잘 받아들인단다. 그만큼 변화와 혁신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말이다.

‘관시(關係·연줄)’ 문화, 즉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서로 주고받는 문화가 방해되지 않느냐 물었다. 그러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의 연고주의가 학연, 지연 등 과거 지향적이고 귀속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는 반면 중국의 관시는 상호 간의 신뢰와 이익, 그리고 목표와 꿈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달라 했다. 그랬더니 중국의 ‘관시’는 서로의 꿈과 목표를 확인하며 ‘도원결의’하듯 맺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유착도 있고, 그 위에 돈도 오고 가지만 그 밑바닥에는 목표 지향성과 미래 지향성 등 우리의 연고주의에서는 볼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었다.

미래 지향성이란 말이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더 파고들었다. “서로의 꿈을 팔고 사고 한다는 말이냐?” 그가 대답했다. “그렇다. 중국에서는 그러한 꿈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치지도자도 성장하는 단계마다 미래 지향적 사고와 그 실현 능력을 검증받는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 즉 ‘팍스 시니카’의 차이나 드림도 그렇게 해서 나왔고, 또 먹히고 있다.”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4·29 총선이 있었던 터라 더욱 그러했다. 꿈이라? 지금 우리에게 그런 꿈과 그 꿈을 실현시킬 전략을 가진 지도자가 있는가? 또 그런 걸로 표를 얻겠다는 정치집단이 있는가? 학연과 지연 중심의 문화를 바꾸는 일까지 포함한 꿈 말이다.

없다. 정치권 안에서부터 꿈과 전략이 아닌 학연, 지연 등의 연고주의가 판을 친다. ‘형님’은 왜 그렇게 많고 ‘동생’도 왜 그렇게 많은지. 아차하면 ‘형님’ ‘동생’을 수천 명 둔 대통령이나 당대표가 나올 판이다. 한 둘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그 정도면 나라가 거덜나지 않겠나? 여기에 또 ‘친노’니 ‘친박’이니 하는 사람 중심의 계파가 형성되어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는 이런 연고주의의 결정판이었다. 국민은 꿈을 가진 지도자들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의 딸과 전직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 후보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정책 경험이 풍부한 후보들도, 나름의 성공 스토리를 가진 후보들도 아니었다. 대체로 그냥 그 딸에 그 비서실장이었다.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꿈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학연과 지연 그리고 계파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형님’ ‘동생’ 하며 민원과 이해관계를 주고받는 흔히 말하는 ‘정치’가 돌아가고 있다.

보궐선거 후의 분위기는 더 절망적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고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시 호남 중심의 ‘뉴 DJ 정당’을 만드느니 마느니 하는 논란 때문이다.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했지만 결국 그 자리다. 아니, 오히려 뒤고 가고 있는 기분이다.

한때 중국의 성장은 우리에게 큰 희망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시장, 그 큰 바퀴에 우리의 작은 바퀴를 걸기면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다. 큰 바퀴가 한 번 돌아갈 때 작은 바퀴는 열 번, 스무 번 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헤매는 사이, 중국은 이제 두려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중국 자본이 우리 시장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고, 적지 않은 분야에서 우리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윤리경영 운운에서 보듯 혁신의 속도 또한 만만치가 않다. ‘기회’가 ‘위협’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중국의 그 큰 바퀴에 눌리지 않을까 걱정할 판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패권놀음에 망국적 지역주의까지 강화하고 있다. 진땀이 난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잃어버린 한국몽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좋은 계절에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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