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파괴적인 굉음이 울려퍼졌다. “굿샷! 와우!” 갤러리들의 탄성이 뒤따랐다. “휙!” 상공을 가른 흰 공이 낮은 탄도로 멀리 날아갔다. 그리고는 갤러리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들의 드라이브샷 장면이 아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장에서의 흔한 풍경이다.
요즘 여자 프로골퍼들의 비거리 경쟁이 또 하나의 볼거리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골프 경기에서의 비거리는 남성들의 자존심을 상징했다. 특히 ‘꿈의 비거리’로 통하는 300야드는 남자 프로골프 대회장에서나 볼 수 있는 일종의 쇼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자 톱랭커들의 비거리도 남자 프로골퍼 못지않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드라이브샷 평균 비거리 부문 1위(270.516야드)에 올라 있는 아리야 주타누간(20ㆍ태국)과 2위 브리타니 린시컴(30ㆍ미국ㆍ270.042야드), 3위 청야니(26ㆍ대만ㆍ267.063야드), 비록 순위는 처져 있지만 미셀 위(26ㆍ미국ㆍ26위 254.912야드) 등은 전 세계 여자 프로골퍼를 대표하는 장타자들로 이들에게 300야드는 결코 꿈이 아니다.
여자 프로골퍼들의 비거리 신장은 몇몇 장타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수년 사이 여자 프로골퍼들의 비거리는 전체적으로 소폭 향상됐다. 올 시즌 LPGA투어 드라이브샷 평균 비거리 부문에서 250야드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총 62명으로 10년 전인 2005년(50명)보다 12명이 늘었다. 260야드 이상을 기록한 선수(15명)도 2005년(8명)에 비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인 비거리 신장을 입증하는 데이터다.
올해 LPGA투어에 출전한 143명의 드라이브샷 평균 비거리는 247.598야드로 2005년 (161명 평균) 245.636야드보다 약 2야드 신장했고, 상위 20명의 평균도 올해 263.174야드로 2005년(260.245야드)보다 3야드 이상 늘었다.
한국 선수들의 비거리도 소폭 향상됐다. 올 시즌 LPGA투어 드라이브샷 평균 비거리 250야드 이상 62명 중 한국선수는 11명이다. 이중 김세영(22ㆍ미래에셋)은 13위(261.176야드)로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미림(25ㆍNH투자증권)은 260.389야드로 15위, 257.984야드를 기록한 장하나(23ㆍ비씨카드)는 19위로 뒤를 이었다.
반면 2005년에는 250야드 이상을 날린 50명 중 한국선수는 박지은(256.5야드ㆍ19위), 송아리(250.9야드ㆍ46위), 김영(250.7야드ㆍ49위), 안시현(250.2야드ㆍ50위) 등 4명뿐이었다.
더 클럽 하우스 소속 골프 인스트럭터 조현(41) 씨는 “예전과 달리 체력훈련 비중이 높아진 게 선수들의 비거리 향상 원인이다. 과거엔 체력보다 스윙 매커니즘을 중시했다면 지금은 단연 체력이 으뜸으로 꼽힌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비거리가 곧 실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올해 비거리 랭킹 ‘톱10’ 중 우승을 맛본 선수는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정상에 오른 브리타니 린시컴뿐이다. 상금순위 ‘톱10’에서도 브리타니 린시컴(5위)만이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조현 씨는 “비거리 순위 꼴찌도 쇼트게임만 잘하면 얼마든지 우승할 수 있다. 당연히 비거리와 성적은 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쇼트게임을 잘하는 선수가 비거리를 조금만 끌어올린다면 우승 확률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특히 요즘 LPGA투어 대회장은 점점 길어지고 있는 만큼 여자 프로골퍼에게 비거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지 오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