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소득주도성장의 성공조건

입력 2015-04-2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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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서울대겸임교수,전 고려대 총장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올 들어 소비자물가가 연속 0%대에 머무르고 있다. 담뱃값 인상분을 제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물가 행진이다. 1999년 이후 16년 만의 초유현상이다. 이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침체한 경제가 장기 불황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소득 주도 성장론이 힘을 얻고 있다.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면 경제 저변에서 소비가 늘어나면서 경제가 활력을 찾고 균형 있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2010년 국제노동기구가 제시한 경제성장방법론으로 신자유주의의 모순에 빠져 방향을 잃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이 이론을 향후 우리 경제가 추구해야 할 기본 기조로 설정하고 갖가지 정책 대안을 준비 중이다. 정부도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최저임금 인상,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기업소득환류세제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면 소득 주도 정책이 과연 우리 경제를 살릴 것인가? 현 경제 상황에서 단순한 소득 주도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우선 최저임금의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경제 저변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계속 올릴 경우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타격을 받아 고용을 줄이거나 아예 부도를 초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면 거꾸로 실업이 증가하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준다. 일반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리기 위해 세제상 규제를 가하는 근로소득 증대세제는 적용 범위가 일부 대기업에 국한된다. 대부분의 일반 기업들은 경영이 악화해 임금을 올려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상장기업 중 40%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형편이다. 기업들의 고액 배당을 유도하는 배당소득 증대세제는 대기업의 대주주나 외국 자본에 이익을 몰아주는 부작용이 크다. 이 경우 기업들이 유보이익이 없어 투자를 못해 거꾸로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실업자를 증가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 기업소득환류세제도 대주주와 외국 자본에 혜택을 집중하고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고갈시켜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두 단계 접근이 필요하다. 첫 단계로 우리 경제는 소득보다는 고용이 성장을 주도하게 만들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근로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경제활동을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의 양대 축인 소비와 투자가 맞물려 증가하는 선순환이 형성된다. 특히 청년들에게 창의적인 일을 맡길 경우 성장잠재력을 확충해 우리 경제가 제2의 도약을 하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우선 우리 경제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과감하게 개혁해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을 늘려야 한다. 또한 임금피크제를 확대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한다. 더불어 연구개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신성장동력 창출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이러한 경제의 구조혁신이 없이는 어떤 소득정책도 무위로 끝난다. 또 재정팽창과 금리인하 등 경기부양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난다.

두 번째 단계로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해 실질적으로 소득이 성장을 이끄는 힘을 갖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자 평균 임금비율은 100대 57이다. 대기업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비율은 100대 66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비율은 100대 68이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비율은 100대 40으로 벌어진다. 이러한 임금구조하에서는 아무리 고용이 늘어도 소득의 양극화로 인해 정상적인 소비와 투자의 연결고리 형성이 어렵다. 따라서 우리 경제는 노동시장 개혁을 일자리 만들기 정책과 병행해야 한다. 임금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청관계를 개혁해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또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법적으로 제도화해 비정규직의 차별대우를 없애야 한다.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지불하는 과도한 임대료를 내리고 프랜차이즈 업체의 횡포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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