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만당(晩唐)의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아방궁부(阿房宮賦)에도 이 말이 나온다. “긴 다리 파도를 가로지르니/구름 없는 하늘에 나는 용은 웬일이며/공중에 매달린 기나긴 복도/마른하늘에 무지개는 웬 것일까/높은 듯 낮은 듯 가까운 듯 아득해서/동서를 알지 못하겠구나/누대마다 노랫소리 아련해/따사로운 봄볕이 녹아내리는 듯/소매 끝에 싸늘한 냉기 춤추는 전각에 서려/비바람이 싸늘하게 몰아치는 듯/하루 사이/한 궁전 안에서도/기후가 고르지 않은 듯하네”[長橋臥波 未雲厦龍 複道行空 不霽何虹 高低冥迷 不知西東 歌臺暖響 春光融融 舞殿冷袖 風雨凄凄 一日之內 一宮之間 而氣候不齊]
얼마나 크고 화려하면 동서를 알 수가 없고 같은 궁전 안에서 날씨가 서로 다를까. 아방궁은 호화판 건물의 대명사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아방궁이 동서 700m, 남북 120m에 이르는 2층 건물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BC 207년 항우가 아방궁에 불을 질렀을 때 3개월 동안이나 탔다고 한다.
중국은 산시[山西]성 시안[西安] 서쪽 아방촌에 당시를 재현한 건물을 세워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고고학자들은 2007년에 “5년 동안 발굴 조사했으나 아방궁은 없었다”고 발표해 큰 충격을 주었다. 어찌된 일일까. 계획은 세웠지만 실제로는 짓지 못한 걸까. 여전히 석연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