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채소류 수급안정을 위한 생산자의 역할을 기대하며

입력 2015-04-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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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선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지난해에는 유례없는 기상 호조와 재배면적 증가, 경기 불황에 따른 소비부진 등으로 인해 배추, 무, 양파 등 대부분의 채소 가격이 급락했다.

정부는 농산물 수급불안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13년부터 생산자와 소비자단체 대표, 정부,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 급등락이 예상될 경우 위원회의 합의와 수급조절 매뉴얼에 따라 생산자단체 등 민간의 자율적 수급조절을 우선적으로 유도하고 추후 시장격리, 수매비축 등 정부 개입을 통해 가격을 안정시키고 있다.

이런 관계기관·단체 등의 노력으로 지난해 주요 채소류 공급과잉과 소비부진 등 수급불안 상황에서도 가격 급락세를 완화시켜 평년 가격을 조기에 회복하는 등 수급안정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일부 농업인단체 등에서는 농가 소득보장 및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정부 주도의 수급안정 대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현재 국내 채소류 생산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해 생산자단체 등의 수급조절 역량이 부족하고, 아직까지는 농업인의 소득을 정부에서 보장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주도의 수급대책만으로 근본적인 수급불안 문제 해결이 가능할까? 개방경제체제(Open Economy) 하에서 경제운용과 선진국 사례를 비추어 볼 때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본다. 국내 채소농업의 영세성과 기상변동 등에 따른 구조적 수급불안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산지 중심으로 품목별 산지 조직화를 통해 생산을 규모화하고, 자율적이고 사전적인 생산조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실제 유럽 등 농업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협동조합 등 생산자단체 주도로 생산을 조정하는 자율적인 수급조절 시스템이 잘 운용되고 있다. 물론 현재 고령화·영세화된 국내 농업 여건에서 단기간에 유럽 등 농업 선진국과 같이 규모화·조직화를 통한 자율적 수급조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조직화 기반을 갖춘 일부 지역 및 품목만이라도 우선적으로 시도해봐야 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 자율적 수급조절 움직임들이 일부 지역에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작년 겨울부터 공급과잉에 따른 무, 당근, 양추 등 월동채소 가격 하락이 예상되자 제주도에서는 생산자단체와 함께 생산 전 작목전환 유도, 적정면적 재배 등을 추진했고, 출하기 전 생산자 자율감축, 소비촉진 홍보 확대 등 사전적·자율적 수급대책을 추진하여 좋은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특히 품목별 생산자로 이루어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저급품 시장출하를 제한하고, 자체 감시단을 운영하여 실행 여부를 감독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하락했던 월동채소 가격이 평년 수준을 조기에 회복하는 등 가격지지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2015년 4월 초 기준으로 가락시장 상품기준 도매가격은 2014년 말 대책 추진 전과 대비해 무는 24%, 당근은 19%, 양배추는 41%까지 상승한 것이다. 물론 설 명절 기간 수요 증가도 일부 작용했지만 생산자, 지자체, 중앙정부의 협업을 통한 수급안정 대책 추진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강원도에서도 작년부터 주산지 농협, 농업인 등이 참여하는 ‘고랭지배추 수급조절협의회’를 구성하고 수급 안정을 위한 자체 기금을 마련하는 등 자율적인 수급 조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배면적 신고제 운영, 출하 시기 조정, 연합판매사업 추진 등을 통해 가격 등락이 심한 고랭지배추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수급안정을 위해서는 생산자단체 조직화를 통해 해당 품목의 수급안정은 생산자 스스로가 책임진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내외 사례로 볼 때 생산자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가격 등락이 심한 농산물의 근본적인 수급 및 가격안정을 이루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ICT를 활용한 농업관측 고도화, 주산지 공동경영체 육성, 계약재배 확대 등 선제적인 노력과 함께 의무자조금제 도입, 유통명령제 확대, 수입보장보험 등을 통한 생산자들의 수급안정 노력을 뒷받침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 조직화된 생산자 단체의 적극적인 활약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통해 한국형 수급안정 모델의 성공적인 출발과 정착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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