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는 ‘기업을 사는 것’… 돈 잘버는 기업에 투자해 같이 성장의 기쁨 나누는 것 저금리고령화 시대 답 ‘주식투자’… “올해는 대세 폭발장” 코스피 고점 2500선 전망
1960년대 경북 점촌 읍내 만화방에서 1원으로 새로 나온 만화책 2권을 즐겨 보던 까까머리 소년. 그 소년은 현재 수 조원의 수탁고를 지닌 운용사의 CEO(최고 경영자)가 됐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가치투자 명가’라는 수식어와 같이 본인도 19년째 한 직장에서 경영 일관성을 지켜온 오뚝이다.
철새 매니저의 직장으로 불리는 운용업계에서 창립 오픈 멤버로 최고 경영자까지 오른 그를 두고 여의도에선 ‘가치투자의 맏형’으로 부른다. 오로지 한 길 만을 소신 있게 걸어온 그의 펀드인생은 ‘대기만성형’으로도 평가된다.
지난 몇 년간 부침도 있었지만 신영자산운용은 지난해 어려운 펀드 업황에도 가장 많은 돈이 유입돼 다른 운용사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결 같은 투자 철학에 대해 개인과 기관 등 투자자들이 믿고 맡기는 신뢰가 공고히 구축된 결과다. 결국 이같은 투자자들의 믿음엔 이 대표를 비롯한 허남권 부사장 등 주요 멤버의 소신 있는 투자철학과 가치투자에 대한 일관성, 믿음이 오롯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올해 주요 계획으로 “대표펀드로 자리 매김한 ‘신영밸류 고배당펀드’를 서민들의 돈을 벌어주는 재테크 수단으로 육성시키고 싶다”며 “서민들을 위해 돈을 벌어주는 안정적인 수익률 달성에 최선을 다하자고 최근 임원회의에서도 직접 말했다”고 밝혔다.
가치투자의 명가에서 서민들의 노후 지킴이 역할까지 톡톡히 하겠다는 그의 포부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법학도, 가치투자 1세대 펀드매니저로
이 대표는 교육자 집안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자는 아니었다. 대학시절까지 그에게 돈을 번다는 것은 2층 양옥집에서 식구들과 오순도순 사는 로망 정도였다.
이 대표는 “아버님이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전근 다니던 경북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 입학하면서 서울에 상경했다”며 “법과대학 동기인 친구가 당시 서울에서 알아주는 재벌집 입주 가정교사를 했는데, 성공해서 이런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돈에 대한 개념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술 심부름을 가다 몰래 옆길로 빠져 즐겨보던 만화책방 이름을 그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 대표는 “만화책방 이름이 ‘월성당’이었는데, 당시 1원으로 신간 2권, 구권은 3권을 볼 수 있었는데 심부름 값으로 받았던 1원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술 심부름을 갔다가 자꾸 만화방에 가는 바람에 형님이 나를 찾으러 오곤 했는데, 곧장 만화방으로 찾아 오시고는 했다”고 회상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그는 사법고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법학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인문학,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은 주말마다 한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그는 직장인의 길을 가게 된다. 이 때 선택한 직장이 현대중공업이다. 제조업의 시대였던만큼 웅장한 규모의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 198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선박영업과 선박 파이낸싱을 담당하면서 외국계 금융기관과 자주 접촉하게 됐다. 그러면서 금융업에 조금씩 눈을 떴고, 매력을 느낀다.
결국 그는 현대중공업을 떠나 투자업계로 옮겼다. 이 대표는 “당시 월가의 비즈니스워크 주간지를 정독하고 ‘정크본드의 아버지’로 알려진 마이클 밀켄의 성공신화에 매료돼 증권업으로 전환하기로 마음을 먹고 1987년 신영증권에 입사했다”고 소회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증권사들이 최대 호황국면을 맞았던 시절이었다. 이 대표는 신영증권 인수부에서 IPO(기업공개)에 이어 국제부에서 한국물 발행과 외국인 투자 유치 업무를 맡았다. 이어 1992년 외국계인 슈로더증권으로 이직해 마켓 스트레티지스트, 외국인과 국내기관 법인영업을 거친 후 1996년 신영자산운용 창립 멤버로 다시 컴백한다.
이 대표는 “셀에서 바이사이드로 오고 싶은 열망이 커서 친정인 신영자산운용으로 다시 이직하게 됐다”며 “새로운 멤버들과 새로운 사고, 새로운 투자철학으로 중무장한 신생 운용사라는 점도 합류하게 된 큰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가치투자로 큰 일을 내자며 도원결의한 허남권 운용총괄 부사장, 나찬권 리스크관리 담당 전무는 19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는 든든한 우군이다.
◇가치투자는 ‘기업을 사는 것’ …“밥 한끼 굶어도 지금 당장 투자해라”
이 대표는 신영자산운용 창립 이후부터 현재 최고로 잘 나가는 운용사가 되기까지 19년간 묵묵히 풍파를 겪어 온 산증인이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에 생소했던 ‘가치투자’라는 투자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직전 직장이 외국계 슈로더였는데, 이미 슈로더에서는 모멘텀 플레이를 철저히 지양하고 가치투자를 기본으로 기업분석과 펀드 운용에 접목시켰다”며 “워런 버핏 이나 피터 린치 등 세계적인 가치투자 전문가들도 기업분석은 장기투자를 밑바닥으로 기업 가치에 주목하는 점에 착안했다”고 전했다.
여의도 가치투자의 맏형이 정의하는 가치투자의 개념은 “기업을 사는 것”이다.
이 대표는 “가치투자는 심플하다. 돈 잘 버는 기업에 투자해 같이 그 성장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라며 “현재 가치보다 낮으면 가치주로 볼만 하지만, 절대 어중간한 가격대에 진입하면 안된다”고 정의했다.
그는 특히 지금이야말로 묻고 따지지 말고 주식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주식, 펀드 투자는 이제 국민들에게 필수적이다. 돈이 없다는 핑계는 변명이다. 돈 없어도 투자해라. 밥 한 끼 굶더라도 투자해야 노년을 준비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가 주식 투자에 나서라고 독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1%대의 초저금리 시대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국민연금으로는 노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15년 벌어서 30년을 살아야 했는데, 이제는 30년 벌어서 60년을 살아야 한다”며 “1% 저금리에 심화되는 고령화 국면을 타개하는 방안은 오로지 주식, 펀드 투자다. 여윳돈이 아니라 월급 쪼개서 지금이라도 당장 적금 넣듯 주식을 사야 한다. 그래야 노후가 보장 된다”고 말했다.
투자에 적기는 없다는 것이 그의 투자철학이자 지론인 셈이다.
◇국내 증시 대세 상승장 “파티에 마지막 초대된 손님”
그는 올해 한국 주식시장이 ‘대세 폭발장’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대표가 예측하는 올해 코스피 고점은 2500p선. 현재 주가 대비 25% 오른 수치다. 이렇게 예측하는 이유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간 국내 증시가 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한국 시장은 파티에 마지막으로 초대된 손님 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면서 “주가가 오르는 요인은 크게 시장심리가 바뀔 때와 기업이 바뀌는 두 가지 요인으로 구분되는데 지금 국면은 시장심리가 변화하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금리 레벨이 낮은데다 부동산 시장도 안 좋기 때문에 풍부한 유동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이 변화하는 원년은 올해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가장 유망하게 주목하는 섹터는 지난 7~8년간 소외됐던 철강, 화학, 해운, 자동차, 은행, 증권주 등 소위 굴뚝주들이다.
이 대표는 “몇 년간 고통의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기술적 분석 측면에서 반드시 한번은 턴어라운드 할 기회가 있다”며 “작년엔 유독 배당, 가치주가 좋았는데 올해는 이들 외에 앞서 언급한 종목들로 리밸런싱 기회를 모색할만 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신영운용은 고배당주펀드로 수 조원이 넘는 신규 자금을 유치했지만, 대표펀드인 마라톤펀드의 성적이 다소 주춤해 속앓이를 했다. 이 때문에 펀드 운용 총괄에만 집중하던 허남권 부사장이 올 초 마라톤펀드 대표 운용역으로 필드에 복귀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수익률이 점차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로인에 따르면 연초이후 4월 7일 현재 신영마라톤펀드의 성과는 14.95%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유형 평균 6.92%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 대표는 “작년 10월과 현재 펀드 포트폴리오는 사실 큰 차이가 없는데, 너무 앞서서 종목 전략을 짠 것 같다. 이제야 펀드에 편입한 종목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투자는 인내심과의 싸움.. 한학 즐기는 선비
가치투자의 맏형인 그의 평소 취미는 ‘한학(漢學)’이다. 바쁜 틈틈이 주말마다 한학, 서예 동호인들과 모여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고전을 읽고 공부하며 힐링한다. 옛 것을 존중하는 보수적인 선비 같은 그의 취미가 어짜보면 한 우물을 파는 가치투자의 맥과 매우 밀접해 보인다.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어구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고래존노마 불필취장도’(古來存老馬 不必取長途)
이 대표는 “늙는 말을 두는 것은 멀리 가기 위해서라는 뜻의 어구”라며 “베테랑으로서의 쓸모가 있기 때문에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차별을 두지 말라는 의미이며, 최근 마음에 많이 와 닿는다”고 말했다.
비교적 두뇌 회전이 빠른 펀드매니저를 선호하는 업계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철학이다. 그는 “늘 새로운 것이 넘쳐나는 자본시장에도 파란만장한 과거 경험을 모두 거친 노련한 전문가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인생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묻자 그는 “인내심과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주저 없이 답변했다.
펀드매니저 후배들이나 투자자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은 “욕심내지 말라”라는 것. 이 대표는 “욕심낸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면서 기다릴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하다”며 “가만히 입 벌리고만 있지만 말고 관심있고 유망한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꼭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