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해야… 다른 사람 사랑”빵 얻어 먹으러 간 軍 법당 설법 감명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어린시절은 떠돌이였다. 선박사업을 하는 아버지 때문에 자주 이사를 했고, 적응에 애를 먹어야 했다.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초등학교만 여섯 군데를 옮겨 다녔다. 그 시절에도 유치원을 다닐 정도로 부유했지만, 아버지 사업 때문에 자주 이사를 가야 했다. 강릉에서 진주로, 다시 인천에서 서울로, 그리고 부산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에 김 회장은 어린시절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김 회장은 서울에서는 ‘촌놈’, 부산에서는 ‘샌님’으로 불렸다. 김 회장은 전학 간 학교에서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어울리려 노력했지만 때론 주먹다짐을 해야 했다.
김 회장은 경남고 시절 몰려다니던 친구들과 서클을 만들기도 했다. 키 179㎝에 주먹이 보통 사람보다 두 배 가까이 컸던 김 회장은 싸움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때 만든 서클 이름이 ‘죽림칠현’이다. 김 회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태권도 2단까지 따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주먹이 반에서 두 번째로 컸다. 주먹으로 거의 제패했다”며 “하지만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회장에게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김 회장은 이때를 ‘인생의 암흑기’였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하루 한끼 먹기가 힘들 정도로 어렵자 군 입대를 결정하고 자원 입대했다. 김 회장은 익산에서 군 복무했다.
김 회장은 군복무 시절 주말마다 성당, 교회, 법당을 다녔다. 처음에는 종교시설에 가면 먹을 것을 줘 갔지만 어느 날 법당에서 설법을 듣고 깨닫음을 얻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법당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을 듣고 야간 보초근무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 자신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이후 김 회장의 군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고교 시절 2단까지 딴 태권도 실력을 활용해 후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선·후임병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조직을 이끄는 법도 배웠다. 김 회장은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힘든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입사하면서 잘 나가는 사람이 됐다. 김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영업의 달인’이다. 가는 곳마다 1등 점포, 1등 회사의 신화를 이뤄냈다.
김 회장이 첫 입사한 곳은 서울은행이다. 이후 신한은행을 거쳐 1992년 하나은행에 입행했다. 하나은행 송파지점장·지방지역본부장·부행장(영남사업본부),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하나대투증권 대표이사 사장, 하나은행장 및 개인금융사업부문 부회장을 역임하고 하나금융그룹 회장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