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랭킹 빛과 그림자] 1등만 기억하는 냉정한 사회

입력 2015-04-0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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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산업적 승패 판단 유일한 기준…‘타인의 소비’량 문화상품 선택 큰 영향음반”영화 티켓 사재기로 순위 조작…막장 드라마후크송 등 부작용 심화

‘최고 스타 강호동,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3~4%대 굴욕’, ‘이진아 정승환…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참가자들, 음원차트 상위 석권 이변’, ‘윤제균 감독,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1000만 영화 두 편 등재’….

하루가 멀다 하고 지상파, 케이블 방송사 프로그램의 시청률 기사가 쏟아진다. 각종 사이트의 음반, 음원 차트 순위가 시시각각 공개된다. 실시간 중계하듯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자료를 바탕으로 영화 관객 수와 흥행 순위가 기사화된다. 특히 방송, 영화, 음악차트에서 상위를 차지한 문화상품에 대한 뉴스가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인터넷에서도 대중문화 각 분야의 순위는 실시간 검색순위 상위를 독식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사, 방송사, 기획사들이 대중매체에 보내는 관객 수, 시청률, 음원 다운수 등 문화상품 랭킹에 대한 보도자료는 홍수를 이룬다. 순위에 목숨 건 듯하다. 이 때문에 기획사의 음원 순위 조작설에서부터 영화사 티켓구매 의혹까지 제작사들의 순위 조작에 대한 각종 의혹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왜 대중문화에선 순위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대중문화는 ‘문화’인 동시에 ‘산업’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사람들의 정서나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즐거움과 교훈을 주는 문화의 역할이 강조될 때에는 대중문화의 완성도나 작품성, 독창성 등이 평가 기준이 된다. 대중문화는 산업적인 측면도 매우 강조된다. 최근 들어서는 한류처럼 대중문화 분야에서 문화적인 측면보다 산업적인 부분이 중요시되는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산업적인 부분은 판매량(랭킹)이 승패를 판가름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팔리는 것이 가장 좋은 대중문화라고 인식한다.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음악 등 대중문화 상품은 초기상품 생산에 비용이 대부분 다 들어가고 다음부터는 복사비만 들어가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평균비용이 하락하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가 발생한다. 소비자의 규모가 늘어날수록 평균비용이 떨어지고 수익이 급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화상품의 판매량은 대중문화 산업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문제는 대중문화 상품은 일반상품과 다른 성격으로 인해 수요예측이 비교적 어렵다. 방송, 영화, 음반 등 문화상품은 경험재, 비소모재, 비반복재, 사치재 등의 상품 고유의 성격으로 인해 정확한 수요예측이 힘들다. 이 때문에 장르, 속편, 스타캐스팅, 다른 문화시장에서 성공한 상품 재가공 등 다양한 수요 안정화 전략을 구사하지만 판매량을 높이는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수요예측이 힘들고 확실한 마케팅 전략의 부재 속에 대중문화 상품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타인의 소비량’이라고 강조한다. 관객수, 시청률, 음반-음원 판매량으로 대변되는 타인의 문화상품 소비량은 소비자들의 문화상품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영화 이길래 1700만 관객이 본 거지?. 안 보면 문화 열등아 되는 것 아닌가”, “‘가족끼리 왜 이래’가 시청률 40%에 도달했다고. 나도 한번 봐야 겠네”, “그 노래를 100만명이 다운로드 받았다고. 노래방에서도 순위 1위라며. 들어볼게”라고 말하는 소비자의 언급은 타인의 소비량이 문화상품 선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작사들이 랭킹에 목숨 거는 것은 그것이 곧바로 판매량을 의미하는 것이고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2차적으로는 랭킹으로 대변되는 타인의 소비량은 잠재적 소비자를 상품 구매로 이끄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드라마 시청률, 영화 관객수, 음원 다운로드수 등 문화상품의 소비량에 근거한 순위가 나오면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 대중매체가 집중적으로 보도하거나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돼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

이 때문에 순위 조작을 위한 음원과 음반, 영화 티켓 등 문화상품 사재기 등의 문제 있는 행태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를 진작하고 관심을 촉발시키는 대중문화 상품 랭킹은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 분야에서의 랭킹은 문화상품이 갖고 있는 문화적 역할과 가치를 무력화시키고 문화상품의 다양성을 죽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문화상품의 양극화 역시 랭킹의 어두운 그림자다.

최근 들어 안방을 점령하고 있는 막장 드라마가 좋은 예이다. 임성한의 ‘압구정 백야’를 비롯한 막장 드라마들은 시청자의 정서에 악영향을 주지만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이유로 집중적으로 편성되고, 완성도 높고 독창적인 드라마들은 시청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만으로 조기퇴출 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이돌의 후크송이 높은 인기와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대중음악계를 후크송이 점령하는 획일적인 현상이 빚어지는 것도 랭킹 지상주의가 낳은 부정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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