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의 두 얼굴…구조조정 속 '高연봉·高배당'

입력 2015-04-0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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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대 가장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최고경영자(CEO)는 거액의 연봉을 챙기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 중시 정책을 명목으로 실적 악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주주를 위한 배당만 잔뜩 늘린 금융사도 속출하는 실정이다.'

◇ 직원 수백 명씩 내보낸 외국계 은행…CEO는 수십억 연봉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실적 악화를 이유로 지난해 영업점 56곳을 폐쇄하고 전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650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낸 씨티은행은 역대 최대 수준인 2천100억원의 배당금 및 해외 용역비를 미국 본사로 보냈다.

배당액은 509억원으로 순이익 1천120억원의 45%에 달해 은행권 최고 수준의 배당성향(배당액/순이익)을 기록했다.

미 본사에 브랜드 비용, 전산 이용료, 광고비 등으로 지급한 해외 용역비는 전반적인 실적 악화에도 전년보다 200억원 넘게 늘어난 1천600억원에 달했다.

더구나 지난해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은 대규모 구조조정 중에 근로소득 25억원, 퇴직금 46억원 등 총 71억원의 보수를 챙겼다.

씨티은행 측은 "해외 용역비나 배당, CEO 연봉 등은 글로벌 기준에 비춰볼 때 결코 과도한 수준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한술 더 떴다.

지난해 실적 악화로 64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SC은행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2013년 17개, 지난해 44개 등 총 61개의 영업점을 폐쇄한 데 이어 지난해 초 15년 이상 근속한 200여명의 직원들마저 내보냈다.

그런데 SC금융지주는 작년에 영국 본사에 1천500억원의 중간 배당금을 지급한 데 이어 내년 초까지 최대 3천억원의 추가 배당마저 검토하고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 와중인 지난해 초 퇴임한 리처드 힐 전 SC은행장은 급여와 상여금, 복리비용 등 명목으로 총 27억원의 금융권 최고 수준 보수를 챙겼다.

이는 총자산이 400조원 안팎인 신한금융지주의 한동우 회장이나 하나금융지주의 김정태 회장보다 많은 보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대규모 순손실이 나고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배당을 늘리고 고액 연봉을 챙기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없는 행태"라며 "국부 유출은 물론이거니와 선진 자본주의에서도 유례가 없는 행태임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배당은 대주주 '쌈짓돈'…"성과 무관한 고액 배당, 기업 경쟁력 약화"

국내 금융사도 대주주나 CEO의 이익을 위해 과도한 배당을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실적 부진을 이유로 올해 사장과 15명의 임원은 물론 전 직원의 16%에 해당하는 406명의 직원을 희망퇴직시킨 메리츠화재도 배당을 대폭 늘렸다. 이 회사의 대규모 구조조조정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2013년 1천127억원이던 순이익은 지난해 1천127억원으로 줄었으나, 배당액은 322억원에서 4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최대 수혜자는 대주주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으로 무려 87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조 회장은 2012년 메리츠금융지주의 순익이 전년보다 69% 급감할 때 89억원의 연봉과 47억원의 배당금 등 총 136억원을 챙겨 비난을 받았었다.

결국 과도한 보수에 대한 금융당국의 검사가 임박하자 자진해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3월 회장직에 복귀했다. 복귀 후 줄어든 연봉을 두둑한 배당금으로 메운 셈이다.

메리츠 측은 "대주주인 조 회장의 지분율이 71%에 달해 많아 보일 뿐 지나친 배당을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동부화재의 경우 2013년 3천886억원이던 순이익이 지난해 4천3억원으로 3% 늘어나는 데 그쳤으나 배당은 633억원에서 918억원으로 45% 급증했다.

그 결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일가는 2013년보다 95억원이 많은 267억원을 배당금으로 받았다.

이 배당금은 공중분해 위기에 처한 동부그룹의 경영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김 회장의 담보 제공 등에 쓰인 것으로 분석된다.

동부그룹이 경영 실패로 구조조정에 직면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김 회장 일가가 동부그룹에서 거둬들인 배당금은 총 1천255억원에 달한다.

론스타의 고배당 정책을 비난하던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의 순이익 중 40%를 배당으로 가져가 버렸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외환은행의 실적 악화는 이전 대주주였던 론스타가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라며 "론스타가 빠져나간 현재는 과거 4∼5년을 수습하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이는 지난해 다른 은행들의 순이익이 크게 늘어난 데 비해 유독 외환은행의 순익만 전년보다 18% 줄어든 것을 뜻한다.

그런데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하나금융은 지난해 이 은행 순익 3천651억원 중 40%인 1천464억원을 배당으로 가져갔다.

국민(22%), 우리(28%), 신한(31%) 등 다른 은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배당성향이다.

론스타의 과도한 배당으로 충분한 내부 유보가 이뤄지지 못해 투자를 못 했다는 주장에 비춰보면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일부에서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연임을 위한 '주주 달래기' 차원의 배당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연우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진의 연봉이나 배당을 높이는 것은 '도덕적 해이' 문제 외에도 회사의 경쟁력과 자금력 약화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오너의 측근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진 연봉이나 배당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경영 성과와 책임에 상응해 배당성향과 경영진 연봉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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