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인터뷰] 전원일기 17년

입력 2015-03-2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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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땅, 양평에서 자연도 가꾸고 마음도 가꿔요! 안남섭(61)

※봄이 되면 만개한 꽃구경을 하고, 저녁이 되면 남한강 강물 위에 떠 있는 달빛을 보며 사색에 잠긴다. 가을이 되면 남한강변에 시장을 열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반상회를 열어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한다. 경기도 양평의 미래마을이다. 자신이 정한 이름 ‘감사하우스’의 안남섭(61)씨가 사는 법이다. 외로움에 사무칠 줄 알았던 그의 전원생활. 이제는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이라 인생이 즐겁다. 10년의 독일 주재원 생활을 청산하고, 17년 전에 시작된 그의 행복한 전원생활에 대해 들어본다.<편집자주>

▲이태인 기자 teinny@

서울에서 남한강을 따라 액셀을 밟는다. 회색의 높은 빌딩은 사라지고 시야가 탁 트일 때 즈음 상쾌한 바람을 맞은 자동차 창문도 하얗게 변한다. 서울에서 전투태세로 무장돼 있던 몸과 마음도 이곳 경기도 양평에 이르자 이내 무장해제되는 기분이다.

양평의 두물머리를 지나 청국장의 구수한 향이 풍기는 음식점들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그 길의 초입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아낙네를 보니 미래마을은 그 길에서 꽤나 멀리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예상을 깨고 언덕 하나를 넘자 이국적인 풍경의 마을이 나타났다. 안데르센 하우스, 대박이네, 라일락집, 감사하우스 등 집집마다 붙어 있는 집 이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햇빛에 반사해 금빛을 발산하는 남한강, 깔끔하게 정비된 조경과 전원주택이 조화를 이룬 마을. 미래 마을이다.

지금이야 유럽의 한 마을에 온 것과 같이 이국적인 정취를 뽐내는 곳이지만, 안씨가 이곳에 터를 잡았던 17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 시골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집을 짓고, 꽃을 심고 마을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자 점점 전원마을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꽃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화 마을이 됐다. 안씨의 삶의 질과 행복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전원생활을 택한 이유

34세에 시작한 독일 주재원 생활. 10년간 이어진 그 생활 속에서 여권에 찍힌 국가의 도장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세계 74개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삶의 콘텐츠를 경험한 안씨는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이웃과 단절된 도시 생활이 아닌 함께하는 전원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다양한 삶과 문화를 경험한 덕분인지 꽃이 많은 마을의 풍경과 주택의 모습은 유난히 외국의 어떤 모습들과 닮아 있었다.

“유럽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었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꽃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마을을 네덜란드의 한 마을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마을 사람들과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뿐만 아니에요. 뭔가 자연친화적인 집을 만들기 위해 새집을 모티브로 집을 지었어요. 자연은 손대지 않고, 경사지에 집을 지어 붕 떠 있는 집을 만들었어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고, 자연과 인간이 만나도록 말입니다.”

안씨가 전원생활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자는 것이었다. 도시 생활, 직장 생활에 젖어 자신을 돌아볼 수 없게 돼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까맣게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에 쫓겨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삶에서 정말 행복한 일인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즉, 내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씨는 나홀로 사색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는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과 소유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성취를 이뤄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겁니다. 남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사색하고, 실천해보고, 제 마음에 집중하니 행복한 삶을 위한 길이 보이더군요.”

◇아내를 위한 카푸치노와 전원생활의 맛

매일 아침 안씨는 아내 이화경(60)씨에게 손수 만든 카푸치노를 대접(?)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주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또 주위에서 그것들을 채우는 날들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행복해진다는 것. 그래서 아내를 위한 카푸치노는 그에게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이 됐다. 누가 커피 한 잔의 여유라 했던가? 카푸치노로 하나 된 부부의 대화는 여유롭지만 그 무엇보다 진지하고, 미래지향적이다.

그들의 전원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이웃이다. 이 부부의 전원생활에서 이웃은 그들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그들이 더욱 이웃에게 투자하고, 공을 들이는 이유다. 그렇다고 이웃이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웃이 주는 행복은 거창하지 않고 꽤나 소박하다. 함께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 삶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1년에 4번 열리는 반상회를 통해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거나, 포트락(Potluck: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는 것)파티를 열어 일상을 충만하게 하는 것 말이다. 이곳 미래마을에서는 품앗이도 하나의 일상이다. 산귀래 문학상 시상을 하는 수필가 박수주씨의 행사를 도와주면, 박씨는 안씨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에 직접 심은 꽃을 대주기도 한다.

마을 한 곳에 모여 한 달에 두 번 차 모임을 갖는 화정다락회도 벌써 10년이나 됐다. 대한민국 다도의 원로격인 신운학 선생의 다실 화심정은 차도를 배우려는 미래마을 이웃들로 북새통이다.

가을 남한강변은 끼와 재능 발산의 장이다. 문호리 리버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피자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팔도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면서 웃음꽃을 만개시키는 것. 그 구수하고 사람 냄새나는 전원생활의 맛에 17년째 중독되고 있는 안씨 부부다. 안씨는 이제 이웃을 빼 놓고는 양평 생활을 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번에는 옆집에서 급하게 전화가 오는 거예요. 아저씨가 쓰러졌다면서 말이죠. 자식들은 멀리 있고 도움을 청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이 저희 집이라고 하더군요. 이제는 정말 이웃이 사촌인 이웃사촌이 된 것이죠.”

▲감사하우스 테라스에서 안남섭(61)씨와 아내 이화경(60)씨. 이태인 기자 teinny@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에게

안씨는 전원생활을 통해 정신적인 것과 대인관계의 부분에서 자신이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한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좋은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전원생활 신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웃에 대한 투자는 성공적인 전원생활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아마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외로움일 거예요.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곳에는 집집마다 담이 낮다보니 사소한 것부터 나누고, 얘기하고, 상의하니까 외로움이 점점 사라지게 됐어요. 사소한 것부터 주변과 나누니, 그 행복이 고스란히 저에게 돌아오더라고요.”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홀로되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외로움’이라는 근심을 피하려 하지 말고 맞서라는 뜻이다.

안씨는 자신이 전원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즐거운 홀로서기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때 즐겁게 지내기 위한 사색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아내에게 카푸치노 타주기도 그 일환이었다. 사색의 시간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바로 실행하는 것. 그것이 홀로서면서 행복해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남이 무엇을 해주기 전에 제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돼요. 남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 보단 홀로 생각하며 행복해지는 것이죠. 사람이라는 게 주면 바로 오는 게 있잖아요. 물질적인 것이든 안 그렇든 말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일 중 ‘사랑에 붕 뜬 장학회’라고 해서 주위에 해외로 가는 아이들에게 100달러씩 장학금을 줬는데요. 이것이 꽤 보람 있더라고요. 이 돈을 쓸 때 제 생각하면서 고맙게 느끼겠죠. 그 마음이면 충분해요.”

◇‘후두염’엔 ‘감기주사’

안씨는 미래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후두염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아! 여기서 후두염은 후두에 염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안씨가 말하는 ‘후두염’은 후회, 두려움, 염려를 줄인 것이다. 하루가 바쁘고, 돈에 쫓기다 보니 엄습하는 ‘후두염’에 자신을 제어할 수 없었다는 것. 그는 전원생활을 통한 ‘감기주사’처방이 ‘후두염’을 다스리는 특효약이라고 말했다. 감사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알고,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안씨가 말하는 감기주사다.

“여기에서 평정심을 찾으니 여유가 생기면서 제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보이더군요. 그것이 전원생활이 준 선물인 거죠.”

▲1. 안남섭씨는 손님이 방문하면 차를 즐긴다 2. 서재에 준비된 다도 세트 3. 남한강변에 위치한 미래마을의 한 전원주택 4. 안남섭씨 부부가 살고 있는 감사하우스. 이태인 기자 te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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