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개발ㆍ성장 위해 엄격한 사회 통제 시행했던 ‘리콴유 시대’ 점차 변할 듯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이자 아시아의‘경제 기적’을 이끈 리콴유 전 총리가 23일(현지시각) 사망하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싱가포르는 리콴유가 없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며 싱가포르의 미래를 전망했다.
이미 리 전 총리가 현실 정치에서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그가 없다고 해서 싱가포르의 정치가 불안해지거나 국민이 동요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경제 개발과 성장을 위해 엄격한 통제를 실시했던 ‘리콴유 시대’가 그의 사망 탓에 점차 변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아시아의 가장 부유한 나라로 거듭한 싱가포르에서는 국민의 정치적 참여와 언론 자유 확대,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1년 시행된 총선에서 리 전 총리가 창당했던 인민행동당(PAP)은 전체 87석 가운데 81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PAP는 1959년부터 지금까지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PAP의 외관상 압승은 실제 내용상으로는 패배였다. 야당인 노동당(WP)이 사상 최다인 6석을 획득하며 약진한 것으로 평가받아 1당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된 것으로 풀이됐기 때문이다.
현직 싱가포르 총리이자 리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은 총선 뒤 “이번 선거는 싱가포르 정치 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줬고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총선 전(前)해인 2010년 경제성장률이 사상 최고인 14.5%를 기록하는 등 대형 호재가 존재한 상황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야당이 많은 의석을 내준 것은 국민의 정서변화와 정치 개혁에 대한 욕구 분출을 의미한다.
물가 및 주택 가격 상승, 외국인 증가에 따른 취업 기회 감소 등 경제적인 요인에서 국민 불만이 비롯됐으나 정치적 자유 확대와 개혁에 대한 요구도 만만치 않다.
경제 개발 과정에서 싱가포르는 엄격한 사회 통제를 실시해 국민의 정치 참여 혹은 언론 자유는 심심찮게 억압을 받았다. 리 전 총리는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으려면 국민의 일부 자유를 제한할 수 밖에 없다”며 마약사범들을 사형에 처했고 식민지 시절의 태형 제도를 유지했다. 또 길거리에 껌만 뱉어도 무거운 벌금으로 다스렸다.
국민의 변화 요구에 맞춰 집권당인 PAP나 리셴룽 현 총리는 적극적인 정치 및 사회 정책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리 총리는 외국인 유입 속도를 대폭 완화하는 정책을 채택했고 물가와 집값을 안정화하고자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나 정치 참여를 억압하는 문화나 사회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셴룽 총리 국부펀드 관리를 비판했던 블로거가 명예훼손으로 제소당하거나 동성애 권익 옹호 운동이 기성 종교계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싱가포르 경영대학의 유진 탄 법학과 교수는 “리콴유 전 총리의 타계는 한 시대의 마감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싱가포르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