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형형색색 봄바람 난 한국 창작 뮤지컬

입력 2015-03-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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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교수/뮤지컬 평론가)

경칩도 지났다. 그러나 봄이 체감되지 않는다.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겨울은 끝이 없을 듯하다. 한국인의 정서적 근황이 이렇지 않을까. 생업도 생계도 미래도 여전히 한파주의보다.

그런데 최근 한국 뮤지컬시장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발견해 암담하지만은 않은데 새봄에 꽃이 만개하듯 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하는 형형색색 다양한 소재의 한국 창작뮤지컬 신작들 덕분이다.

세계적인 보도 사진작가 베르너 비쇼프는 1952년 한국의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복면한 얼굴로 춤을 추는 포로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지금 한국의 뮤지컬 창작자는 그 이미지를 탭댄스에 빠진 인민군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로 완성했다. 뮤지컬 ‘로기수’ 이야기다.

충무아트홀의 지원 프로그램 ‘뮤지컬 하우스 블랙 앤 블루’는 한국판 ‘In to the Woods(인 더 우즈)’와 같은 비틀린 동화 뮤지컬을 발견하고 가족 뮤지컬에 특히 강한 메이저 제작사 ㈜PMC프로덕션과 연결했는데 세태풍자가 시원스러운 이 뮤지컬도 소재의 참신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명한 연극 ‘봄날은 간다’를 시극 형태의 포에틱 뮤지컬이란 생소한 장르로 재구성하고 스타 조명 디자이너 구윤영의 서정적 조명 예술로 완성한 뮤지컬 ‘봄날’은 뮤지컬 관람의 생경한 행복감을 선사하는 선물 같은 뮤지컬이다.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11일간 실종된 실화를 뮤지컬로 파헤쳐 가는 미스터리 뮤지컬 ‘아가사’는 국내 창작 뮤지컬로는 용기 있는 도전이라 할 만하다. ‘셜록 홈즈’에 이어 창작으로는 쉽지 않은 추리물로 성공한 사례다. 게다가 뮤지컬 스타 최정원이 창작뮤지컬에 뛰어든 작품이다. 2년 만에 재공연되는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는 뱀파이어 뮤지컬이다.

얼마 전 막 내린 화제의 뮤지컬 ‘달빛 요정과 소녀’는 요절한 원 맨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의 자서전 같은 노래들로 만든 독특한 구조의 주크박스 뮤지컬이었다.

뜨거운 호응에 곧 재공연으로 보답하는 뮤지컬 ‘파리넬리’의 완성도와 스케일은 의외의 복병이었다.

그야말로 봄꽃 터지고 언 강물 터지듯 만발한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창작뮤지컬들이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프로그램인 ‘창작뮤지컬 육성 지원사업’은 ‘곤, 더버스커’ ‘파리넬리’ ‘주홍글씨’ ‘바람직한 청소년’ ‘달빛요정과 소녀’ ‘가야십이지곡’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런웨이비트’ ‘아보카토’ ‘봄날’ 등 최근 화제작들을 줄줄이 시범 공연 형태로 선보이며 롱런할 가능성이 있는 창작뮤지컬, 그래서 한국의 뮤지컬 창작자들을 먹여 살릴 효자 공연들을 잉태하고 있다. 지난해 최고의 성공작인 대규모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바통을 이어 받을 기세로 준비되고 있는 ‘아리랑’과 ‘마타하리’ 등의 초대형 창작뮤지컬까지 성공하면 한국 뮤지컬 시장은 그동안의 위기와 올해의 기회인 줄타기에서 살아 버텨 계속 하늘을 향해 놀 수도 있다. 왜냐하면 창작뮤지컬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면 그동안 해외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을 빌려 써 오면서 외국에 지불해 온 비싼 로열티를 아낄 수 있고 창작 환경이 개선되어 역량이 뛰어난 뮤지컬 전문 창작자들이 늘어나고 적어도 아시아에 한국 뮤지컬을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기기 때문이다.

10년 전 뮤지컬 전문가들이 모인 한 대담 자리에서 미래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은 생고생이어도 창작뮤지컬을 치열하게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나에게, 당시 라이선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 신화로 한국 뮤지컬 시장을 급성장시킨 설도윤 프로듀서가 “창작뮤지컬 열심히 만드세요, 나는 라이선스 뮤지컬로 돈 벌 테니”라고 발언했던 기억이 뼈저리다. 그후로도 라이선스 뮤지컬 비즈니스로 한국 뮤지컬 시장의 규모와 풍토를 성장시킨 주역의 역할을 해 온 그는 그때 그 특유의 뛰어난 선견지명으로 오랫동안 한국 뮤지컬 시장은 라이선스 뮤지컬 점령지일 수밖에 없음을 자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건 단 한 번도 약속이 어긋나지 않은 자연의 섭리다. 지난해부터 2015년은 창작뮤지컬 활성화와 뮤지컬 창작자 세대교체의 원년이 될 것으로 예측해 왔다.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힘겹게 버텨 온 창작뮤지컬의 생명력이 맞이하는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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