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바뀐 게 아직도 안 돌아왔어요.”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래원(34)은 수척한 얼굴로 SBS 드라마 ‘펀치’의 종영소감을 전했다. ‘폭풍감량’이란 말이 나올 만큼 살을 많이 빼고 임한 작품이었다. 오히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박정환 검사의 삶과 그의 수척함은 잘 맞아 떨어졌다.
“영화(‘강남 1970’)하면서 살을 뺐다. 원래 살이 찌는 체질인데 작품 시작하면서 15kg을 뺐다. 저녁 시간의 식단을 조절하니 빠지더라. 나중에는 3~4kg 더 빠져서 너무 해골 같아 보였고, 다시 먹기 시작했다. 촬영 일정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잠을 못 잤고, 세수를 3일 만에 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계속 먹어도 살이 빠졌다. 처음과 비교해서 20kg이 빠졌다. 이제는 조금 찌워야한다. 너무 살이 빠져 걱정했는데 ‘펀치’의 박정환 역과 잘 맞아떨어졌다. 극 중 상황과 맞게 진정성 있었다고 생각했다.”
‘펀치’ 박정환 검사는 사실감 넘치는 인물이었다. 김래원의 연기는 힘을 뺀 것 같으면서도 임팩트 있었다. 누구나 박정환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었다. ‘펀치’의 수많은 인기비결 중 박정환의 몫이 결코 적지 않다.
“검사임에도 중학교 레벨에 맞춰달라는 이명우 PD의 주문이 있었다.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연기해야 했다. 하지만 박정환은 어려워도 된다고 생각했다. 표정과 대사에 큰 감정 변화가 없어도 내면적으로 세밀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강남 1970’을 찍고 그 호흡으로 연기했다. ‘인간극장’이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람처럼 표현했다. 그럼 점이 박정환의 무게와 깊이에 진정성을 넣는데 큰 힘이 됐다.”
‘추적자 THE CHASER’ ‘황금의 제국’ 등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박경수 작가의 집필 방식도 김래원과 잘 맞아떨어졌다.
“극 중 박정환은 아프다. 박경수 작가가 큰 팁을 줬다. 정환이가 많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는 티내지 않되, 아플 때는 확실히 아파야겠다고 생각했다. 극을 살려 대본을 잘 써줬다. 또 분위기를 잘 만들어줬다. 그런 점이 연기하는데 큰 힘이 됐다.”
그래서였을까. 아픔을 표현하는 김래원은 사력을 다했다. 이마에는 핏대가 섰고,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충혈됐다.
“시청자들이 ‘쟤 아픈 애구나’라고 인식하는 것을 넘어 ‘진짜 아픈가보다. 어떡해’라고 생각하게 해야 했다. 연민을 느끼기 전 박정환은 살아야 하고 복수해야 한다는 것을 외적으로 표현했다. 실제 날씨가 추운 날 촬영하다가 안면에 마비가 온 적 있다. 그때 촬영분을 보면 대사도 어눌하다. 밥도 못먹고, 그때 또 하루 반 굶어 살이 빠졌다.”
김래원은 스스로 ‘펀치’의 명장면을 꼽으며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 취임식 당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곁에 서 있는 박정환 검사를 떠올렸다. 조재현이란 배우의 존재는 김래원에게도 든든한 존재였다.
“조재현 선배와 주거니 받거니 연기해서 좋았다. 애증의 관계를 잘 가질 수 있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7년 동안 죽고 못 사는 형제 같은 사이로 나와야 했다. 재촬영을 하는 등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조재현 선배가 잘 이끌어줬다. 정말 대단한 힘이다. 나중에는 애드리브도 미리 다 생각해오더라. 한 마디로 촬영현장에서 날아다녔다.”
김래원은 또 김아중과 부부 호흡, 김지영과 부녀 호흡을 맞췄다. 가족의 존재는 극 중 박정환 검사에게도, 김래원에게도 특별한 존재였다.
“극 중 김아중은 선의 인물이었고, 난 악의 인물이었다. 서로 다른 이야기로 계속 부딪히기 때문에 호흡이 안 맞아야 정상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기를 완전 좋아한다. 보통 아역들은 느끼는 대로 연기한다. 김지영은 아역 이상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어떤 연기에 대해 ‘이거 아닐까?’라고 말하면 ‘응’이라고 그런다. 알았다는 뜻이다. 아기랑 연기할 때 제 연기도 꾸며지지 않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나쁘게 보이는 게 대세”라는 그의 말처럼 ‘펀치’ 박정환 검사와 ‘강남 1970’ 백용기는 모두 김래원의 배우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강남 1970’은 시나리오를 보고 딱 꽂혔다. 당시에는 이민호가 캐스팅 된지 모르고 이 역할 하고 싶다고 했다. 진짜처럼 연기했고, 유하 감독식 연기를 드라마까지 가져와 큰 도움이 됐다. 이민호와는 친동생처럼 지내고 있다. 드라마 끝나고도 계속 연락한다.”
“15년째 집에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 여동생은 제 돈으로 유학을 다녀왔다”고 뿌듯한 사연을 전한 김래원은 1997년 청소년 드라마 ‘나’로 데뷔해 정상의 인기도 실패도 모두 맛봤다. 이제는 연기에서도 일상에서도 여유가 가득하다. ‘펀치’ 박정환을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연기한 그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