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불어터진 국수’는 누구나 싫다

입력 2015-02-2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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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박근혜 정부가 25일로 한 살 더 먹는다. 5년 임기에서 3년차로 접어드는 해다. 인명이 100세 시대라니 정부의 나이를 대입하면 박근혜 정부는 60대가 된 셈이다. 예순을 가리키는 이순(耳順)은 경청과 순응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폭넓게 판단하고, 무리 없고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뜻을 담은 말일 것이다.

환갑에 국정 최고 책임자가 된 박 대통령은 이번 설에 아버지가 대통령일 때의 나이를 넘어섰다. 원숙한 나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박 대통령에 대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좋은 점만 반반 닮아 결단력과 판단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좋은 점만 닮은 것 같지는 않다. 박 대통령 부모의 좋은 점은 무엇이었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력과 용인술, ‘청와대 야당’이라는 말을 들었던 육영수 여사의 공감과 소통능력이 아닐까. 박 대통령이 그런 능력을 고루 갖췄다고 말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 3년차를 계기로 여러 신문과 방송이 특집기획을 하면서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인사문제와 소통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기용과 2·17개각을 통해 또 한 번 명백하게 드러난 문제점이다. 어느 후보자보다 더 문제투성이인 사람을 총리로 임명해 국가의 제2인자 자리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민주적 절차를 밟아 인준한 국회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각종 행사나 회의에서 낭독하는 이 총리의 ‘거룩한’ 말씀에 진정으로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박 대통령 인사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우선 내 사람이나 수첩 속의 인물만 기용하는 편협성. 이미 수없이 지적된 문제점이다. 소통과 탕평을 위해 널리 사람을 구하라는 충고나 조언을 박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럴 의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문제점은 왜 이 사람을 기용했으며 왜 내보내는 것인지 본인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하지 않는 점이다. 2·17개각의 경우도 일국의 장관쯤 되는 사람이면 자신이 왜 기용됐는지, 무슨 문제가 있어 그만두게 됐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런데 비어 있던 해양수산부 장관을 새로 임명한 것 외에 나머지 인사는 왜 한 건지 아는 사람이 없다. 임기 3년인 금융위원장은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지만 아무런 설명도, 유감 표명도 없었다. 지난해 유진룡 문화부 장관처럼 해외 출장 중 잘린 사람도 있다.

출처어묵(出處語默)은 나아가 벼슬하는 일과 물러나 집에 있는 일, 의견을 밝히는 일과 침묵을 지키는 일 네 가지를 뭉뚱그린 말이다. 네 가지가 다 중요하고 알맞은 때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사람을 내보낼 때의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 내쫓기듯 나가는 사람들은 이제 박 대통령의 적이 되거나 폐품이 되어 버린다. 사람 기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들도 다 인재인데 이렇게 망쳐 놓으면 결국 나라의 큰 손실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개각은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시켜야 할 필요가 있어서 바꾼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아니면 원래 계획한 대로) 내각의 3분의 1이 새누리당, 그것도 친박계 인사로 채워졌다. 이들 중 상당수가 내년 4·13총선에 출마하려 할 테고 그러려면 90일 전인 1월 14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총선용 개각이라는 비판을 듣는 게 당연하다. 지금 내각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단점만 모아 놓은 꼴이라고 평한 사람도 있던데, 참 얄궂고 고약한 일이다. 네 사람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무슨 문제점이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어차피 시끄러워 봤자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경제 걱정을 하면서 ‘불어터진 국수’ 이야기를 했다. 시기를 놓친 법안 개정을 탓한 말인데, 사실은 박 대통령의 인사가 불어터진 국수와 비슷하다. 한 박자 이상씩 늦는 데다 감동적이지 못하다. 비서실장 인사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설명 없이 후보자들을 거부만 하고 있는 국립대 총장 인사의 경우는 불어터진 게 아니라 음식과 그릇이 어디 갔는지도 모를 정도다.

설날 연휴에 불어터진 떡국을 먹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떡국 맛이 나니 음식을 처리하는 차원에서 마지못해 먹기는 했지만 일상적으로 불어터진 음식을 먹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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