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작년 투자액수 1조9000억원 머물러…2011년 수준으로 후퇴
CJ그룹이 싱가포르 물류기업 APL로지스틱스 인수에 실패했다. 재계는 이재현 회장의 공백으로 적극적인 베팅을 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3일 재계와 M&A업계에 따르면 APL로지스틱스 본입찰에서 일본 KWE는 엔화 약세를 발판으로 약 1조3500억원의 액수를 써내 CJ대한통운을 제치고 인수에 성공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당초 APL로지스틱스의 적정 인수가는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로 예상됐다. 그러나 매수 기업들의 강한 인수의지가 반영되면서 결국 적정가를 크게 웃돌게 써낸 KWE가 승자가 됐다. 이에 반해 CJ대한통운은 오너 부재가 장기화되면서 시시각각 급변하는 이번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CJ대한통운은 APL로지스틱스를 인수해 글로벌 물류기업들과 세계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춘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나, 결국 물거품으로 끝났다.
APL로지스틱스는 싱가포르 국영선박회사인 NOL의 자회사로 64개국, 110개 물류거점을 통해 자동차, 소비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8000억원이며 직원 수는 5600여명이다. 북미와 아시아 지역 네트워크가 탄탄하고 자동차, 내구 소비재, 가전, 포장화물, 소매물류 및 의류, 신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군으로 확보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이 인수전에 성공했더라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CJ그룹 관계자는 “M&A에서 승부를 가르는 건 가격인데, 전문경영인이 적정인수가 이상의 결정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근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 입찰에서 10조원을 써낸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이나 KT렌탈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롯데 신동빈 회장의 공격경영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현재 이 회장은 경영공백 3년차에 접어들었다. 최근 CJ그룹 계열사들은 수차례 M&A나 투자 프로젝트에서 총수 부재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CJ대한통운은 2013년에도 미국 종합물류업체와 인도 물류기업 인수를 검토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수도권에 구축하려던 물류허브 프로젝트도 무기한 연기했다. CJ제일제당 역시 물자원사업부문에서 베트남업체와 중국업체를 대상으로 M&A를 추진했지만 최종 인수 전 단계에서 중단했다. CJ오쇼핑 역시 해외 M&A를 통해 사업을 확대하려다 보류했다. 올초 해외 극장 사업에 대한 투자를 추진하려했던 CJ CGV도 각종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CJ그룹의 투자액수를 보면 이 회장 공백의 여파는 여실히 드러난다. CJ는 2010년 1조3200억원, 2011년 1조7000억원, 2012년 2조9000억원 등 해마다 투자 규모를 확대했다. 그러나 이 회장이 구속된 2013년에는 당초 계획보다 20% 못미친 2조6000억원 투자에 그쳤고, 작년에는 1조9000억원대로 다시 수직 하락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3년 간의 투자 부진이 CJ그룹의 미래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