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조1400억유로 유동성 공급...연준 주도로 글로벌 중앙은행 정책 차별화 가속화할 듯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결국 행동에 나섰다.
드라기 총재는 22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매월 600억 유로(약 75조5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사들이는 전면적 양적완화(QE)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입 자산에는 기존에 사들이던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은행권의 커버드본드에 민간과 공공 채권이 포함된다. QE는 오는 2016년 9월까지 진행되며, 총 매입 규모는 1조1400억 유로다.
드라기 총재는 “ECB는 기존 ABS와 커버드본드 매입에 이어 확장된 자산매입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목표인 연 2%에 미치지 못하는 인플레이션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QE가 종료된 이후에도 상황에 따라 추가적인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채권 매입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회원국 중앙은행이 자본 출자액 규모에 따라 진행하고, 전체 매입량의 12%는 회원국 전체가 위험을 분담할 계획이다. ECB는 추가 매입 자산의 8%를 보유해, 회원국이 손실과 관련 20% 수준의 위험을 분담하도록 했다.
이번 QE에는 오는 25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그리스 국채도 포함됐다.
QE 규모는 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전일 유로존 중앙은행 관계자를 인용해 ECB가 월 500억 유로 규모의 자산을 매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ECB의 결정에 대해 투자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슈퍼 마리오’가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가 마침내 바주카포를 쐈다”며 “딜이 성사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ECB의 전면적 QE 결정을 반겼다.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블룸버그와 인터뷰를 갖고 “우리는 기다렸던 것을 얻었다”며 “이번 결정은 매우 중요한 첫 단계이자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카린 카바노프 보야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선임 투자전략가는 “시장은 큰 것을 기다렸고, 이날 ECB가 전한 소식은 분명 큰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유로존 경제를 살리려면 ECB가 더욱 공격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스캇 마이너드 구겐하임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다보스에서 경제전문방송 CNBC의 투자 프로그램 ‘스쿼크박스’에 출연해 “ECB는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보다 더 많은 채권을 매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CB는 내년 9월까지 재무제표를 달러 기준 1조3000억 달러 확대할 계획이지만, 이는 연준이 지난해 10월 종료한 QE 프로그램을 통해 늘린 4조5000억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이너드 CIO는 “ECB의 QE 데드라인은 (전면적 QE에 부정적인) 독일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드라기 총재는 매우 정치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드라기 총재는 추가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국에 이어 ECB가 전면적 QE에 나선 가운데 글로벌 중앙은행의 정책 차별화는 이어질 전망이다.
마켓워치는 ECB의 QE 도입에도 연준은 금리인상 시기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달러 강세와 주요 지표 호전으로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긴축 고삐를 느슨하게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스위스중앙은행(SNB)의 유로화에 대한 최저환율제 폐지와 함께 지난주에만 덴마크 터키 인도 캐나다 페루 등이 금리를 인하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ECB는 이날 정례 금융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는 현행 0.05%로 유지했다. 예금금리는 마이너스(-)0.20%, 한계대출금리는 0.03%로 동결했다.
ECB의 결정에 대해 주요 증시는 등락을 거듭한 뒤 상승세로 방향을 잡는 등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증시에서 DAX지수가 1% 가까이 올랐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00포인트 상승하는 등 뉴욕증시 주요 3대 지수 모두 올랐다.
막대한 유동성 공급 전망에 따라 유로화 가치는 달러에 대해 1.5%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