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코리아 질주 본능을 깨우다 [오상민의 스포츠 인물사]

입력 2015-01-2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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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고 있는 이상화. (뉴시스)

캐나다 밴쿠버 부근의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은 한국 스포츠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장소다. 빙속 변방 코리아에 질주 본능을 깨운 역사적 장소다. 그 중심엔 ‘빙속 여제’ 이상화(26)가 있었다.

2010 밴쿠버올림픽은 한국 빙속을 위한 대회였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모태범(26)에 이어 이상화가 여자 500m에서 거짓말 같은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만약 이상화의 금메달을 예견했다면 그건 거짓말일 듯하다. 한국 빙속은 모태범과 이상화의 금메달 획득까지 무려 70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에서 김정연이 남자 1만m 12위를 올랐지만 이후 수십 년간 빙속 불모지라는 수식어를 떼내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 배기태(50)라는 걸출한 스타가 등장하기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배기태는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 남자 500m에서 5위에 그치며 세계의 벽을 실감케 했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는 김윤만(42)이 남자 1000m에서 은메달을 따냈지만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빙속 금메달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이후에도 제갈성렬(45), 이규혁(37), 이강석(30) 등 당대를 대표하던 스프린터가 올림픽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금메달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유일한 메달은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이강석이 남자 500m에서 따낸 동메달이 전부다.

그러나 이상화는 과거 큰 대회 울렁증에 시달리던 한국 빙속에 질주 본능을 깨우며 빙속 변방을 빙속 강국으로 올려놓았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당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세계기록 보유자 예니 볼프(독일)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2014 소치 대회에서도 다시 한 번 세계 최강임을 입증하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그의 질주가 돋보이는 이유는 멈추지 않는 엔진을 장착했기 때문이다. 서울 은석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1인자를 지키며 2004년 겨울 태극마크를 단 이후 단 한 차례의 슬럼프도 없었다. 2013~2014시즌에는 4차례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고, 지난해는 동계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에 이어 월드컵 4회 연속 금메달 행진을 이어갔다. 동갑내기 국가대표 모태범은 밴쿠버 대회 이후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며 소치 대회 노 메달에 그친 점과 비교해도 대조적이다.

23인치(58.42㎝)에 이르는 허벅지 둘레와 굳은살로 가득한 발바닥은 그간 이상화의 고단한 생활을 대변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보증수표는 아니었다. 이상화 이전엔 누구도 세계 정상에 선 사람이 없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확신으로 바꾼 건 오로지 노력이었다. 그것은 기록으로 입증됐다.

이상화의 스케이트 날은 이제 3년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한국 빙속 가능성을 넘어 세계 빙속 역사마저 모조리 갈아치운 그에게 라이벌이 있다면 오직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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