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 잠자리를 함께 한 여고생이 임신했고, 여고생 어머니의 요구로 '결혼하겠다'는 각서를 쓰고는 지키지 않은 20대 남성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현재 22살인 A(여) 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2010년에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우연히 만난 B(28) 씨와 잠자리를 했다.
A 씨는 이후에도 3∼4차례 B 씨를 만나 성관계를 했다.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A 씨의 어머니는 B 씨를 찾아가 '딸이 임신한 지 20주가 넘었다'며 책임지라고 따졌다.
B 씨는 더 지체하면 낙태수술을 받기 어렵다며 임신중절수술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으나 A 씨 어머니는 '결혼 각서'를 요구했다.
결국 B 씨는 '2011년 5월까지 혼인신고를 하고 만약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위자료 등으로 2억원의 손해배상을 책임진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해 건넸다.
A 씨는 약정서를 받은 다음날 모 병원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B 씨는 수술 이후 A 씨의 연락을 피하고 결혼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A 씨는 B 씨가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해 1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부산가정법원 가사1부(김문희 부장판사)는 'B 씨는 A 씨에게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에 결혼 이야기는 전혀 없었던 점과 B 씨가 혼인할 의사도 없이 낙태를 시킬 목적으로 일단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들어 두 사람 사이에 약혼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B 씨가 미성년자인 A 씨와 성관계를 해 원하지 않던 임신을 하도록 한 점, 약정서를 주면서 임신중절수술을 하도록 하고 이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점, A 씨가 임신에 관한 주의의무를 더 부담한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약정서에서 정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A 씨도 경솔한 행동을 했고 2억원은 B씨가 지급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는 금액이기 때문에 손해배상금 중 1천만원을 초과한 부분은 무효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