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어제/12월22일]첫 이지스함 실전배치…봉래산 향로 발굴…드레퓌스 사건

입력 2014-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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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안 역사

▲한국형 이지스구축함인 세종대왕함이 천안함 4주기를 앞둔 2014년 3월 19일 충남 태안반도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열린 2함대 해상기동훈련에 참가해 항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3년> 추신수, 텍사스 구단과 아시아계 메리저리거 중 최고액인 7년 1억3000만달러에 계약

<2008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의 딸 사위 사돈까지 세종증권 주식을 되팔아 6억원을 챙겼다고 발표


<2008년> 국내 최초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실전배치. 함번은 ‘DDG-991’. DDG는 유도 미사일 구축함(Guided Missile Destroyer)의 약자다. 함 옆에 991라는 번호가 칠해져 있다. 이지스함은 강력한 레이더로 수백㎞ 이상 떨어진 적 항공기를 발견해 미사일 등 첨단 무기로 요격할 수 있다.‘신의 방패’란 요란한 별명처럼 강력한 방공망을 전개할 수 있어 현대 해상전의 총아로 꼽힌다.


세종대왕함이 이날 전력화되면서 한국은 미국·일본·스페인·노르웨이에 이어 5번째 이지스함 보유국이 되었다. 미국의 주력 이지스함인 알레이버크 급 구축함보다 10% 크고, 일본의 아타고 급보다 조금 더 컸다. 성능도 미국의 이지스 구축함을 제외하고는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알레이버크 급이나 아타고 급의 수직발사기(VLS:Vertical Launching System)는 96개인 데 비하여, 세종대왕함은 이보다 32개 많은 128개를 갖추고 있다. 이중 48개는 함대지 크루즈 미사일 '천룡(天龍)' 32발과 대잠 미사일 '홍상어' 16발 등 국내에서 개발한 한국형 수직발사기들이다.


이지스함 사업은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독도 도발에 맞서 해군 기동함대 건설을 해군참모총장에게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IMF사태로 백지화됐지만 후임 김대중 정부는 본래 계획보다 적은 이지스함 3척을 진수하고 대신 이지스함의 화력을 높이는 쪽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진수식은 2007년 5월 25일 울산 현대중공업 제6도크에서 진행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 인사문을 준비했는데, 가슴이 벅차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오늘은 대한민국 해군이 최고 성능의 배를 가지게 된 날이다“라고 말했다.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은 “국민의 안위와 국방력 강화에 힘썼던 세종대왕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의미로 세종대왕함으로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세종대왕함은 실전배치 당시 한국 해군이 보유한 전투함 중 가장 컸다. 길이 166m, 폭 21m에 기준 배수량은 7600톤이다. 만재 배수량은 1만톤에 육박한다. 스페인과 노르웨이이 보유한 5000톤급보다 휠씬 크다. 승무원은 300여 명이며 가격은 무려 1조1000억원에 달했다. 최첨단 장비를 대거 장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투시스템은 이지스 베이스라인 7.1과 비슷하지만 해성 미사일, 램 , 골키퍼 CIWS 등 독자적인 무기체계도 탑재하고 있다. ASWCS-K 대잠전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과 율곡이이함 등 해군 7기동 전단 해상 전력이 2013년 2월 동해상에서 기동훈련을 벌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세종대왕함은 2009년 4월 5일 북한의 대포동2호 발사를 15초 만에 탐지하고 그 궤적을 정확히 추적하는 위력을 과시했다. 동해상에 함께 머물던 미국, 일본의 이지스함보다 한 발 앞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체 4면에 고정된 SPY-1D란 레이더는 1000㎞ 떨어져 있는 적 항공기 같은 표적 약1000개를 동시에 찾아내 이중 20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대포동2호를 쪽집게처럼 잡아낸 것도 바로 SPY-1D 덕이었다. 세종대왕함은 2010년 참가한 림팩훈련 화력지원훈련에서 7개국 19척 함정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어 탑건함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이후 두번째 이지스함인 율곡 이이함(DDG-992)과 세번째인 서애 류성룡함(DGG-993)이 각각 실전배치되면서 2014년 12월 현재 한국 해군은 3척의 이지스함을 운영중이다.


<2001년> 북한 공작선, 일본 순시선과 교전을 벌이다 침몰

<2000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발표

<1999년> 대한항공 8509편, 영국 스탠스테드 공항 이륙 직후 추락해 탑승원 4명 전원 사망


▲국립 부여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2010년 7월 11일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를 감상하고 있다.(사진=뉴시스)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 ‘금동 용봉봉래산 향로’ 발굴. 높이 64㎝로 뚜껑 손잡이, 뚜껑, 몸체, 다리 부분 등으로 구성된 향로는 국내에서 발굴된 향로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정교해 백제 유물의 백미로 꼽힌다. 뚜껑에는 피리 비파 현 금 북 등을 연주하는 5인의 주악상이 있고, 30개 봉우리에는 지팡이를 든 사람을 비롯해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등 동물상과 폭포 등이 양각돼 있다.


<1992년> 한국-베트남 수교

<1992년> 광케이블망 국내 첫 개통

<1983년> 공안 관련자 172명 석방, 정승화 고은 등 142명 복권

<1982년> 치안본부(현 경찰청), 신체 장애자에 운전면허 응시자격 허용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달성

<1947년> 귀국한 상해임시정부 주석 김구,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성명

<1938년> 숙명여전(현 숙명여대) 개교

<1909년> 친일 매국노로 몰린 이완용, 벨기에 황제 추도식이 열린 명동성당에서 이재명에게 피습당함

<1909년> 원각사 개관

<1902년> 최초의 하와이 이민자 121명 인천항 출발

◇ 나라 밖 역사

<1995년> 국제 무역과 초국적 자본 이동의 이론에 대한 공로로 197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영국 경제학자 제임스 에드워드 미드 사망

<1961년>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 사망

<1989년>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정권 붕괴


▲드레퓌스 사건을 둘러싼 당대 프랑스 국민들의 분열을 풍자한 1898년 2월 14일자 '피가로'지 만평. 식사 시간에 “오늘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맙시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에서 “결국은 이야기했다”라면서 가족이 싸우고 있다.
<1894년> 유대계 프랑스 육군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독일에 군사 기밀서류를 팔았다는 혐의로 종신형 선고받음. 재심을 놓고 인도주의와 공화주의를 지지하는 세력과 군국주의와 반유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패가 갈리면서 프랑스 사회가 큰 갈등을 겪었다. 1896년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는 공개장이 발표된 후 재심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고, 이후 무죄가 확인돼 복권됐다.

사상면에서 큰 영향을 준 드레퓌스 사건은 정치적인 면에서도 제3공화국을 비롯한 프랑스 정계가 민주적 방향으로 재편성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군 복귀 후 소령으로 승진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1882년> 최초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전구 등장

<1876년> 그레이엄 벨, 세계 최초로 전화기 발명

<1849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사형 선고 받음

<1808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인 ‘운명 교향곡’, 빈에서 초연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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