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면 만에 정상화...유가 급락으로 러시아ㆍ베네수엘라 위기 빠진 것도 배경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쿠바와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나선다고 전격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특별성명을 통해 이 같이 밝히고 “미국의 쿠바 봉쇄는 쿠바의 민주화와 번영 그리고 안정을 목표로 했지만 실패했다”며 대(對)쿠바 봉쇄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다.
미국은 쿠바 내 미 대사관 개설을 비롯한 외교관계 회복과 함께 여행 자유와 수출입 품목을 확대하는 한편 테러지원국 해제를 검토하기로 했다.
피델 카스트로가 지난 1959년 혁명을 통해 공산화를 선언하고, 자국 내 미국 기업을 국영화하자 미국은 1961년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고, 1962년에는 금수조치를 취했다.
당시 구소련을 중심으로 공산주의가 확산한 것이 이 같은 강도 높은 조치의 배경이 됐다. 이후 금수조치 유지 및 해제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렸지만 큰 틀은 유지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979년 여행금지 조치를 완화했지만,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2년 이를 다시 복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에 다시 여행규제를 풀었으며, 쿠바 내 위성TV와 이동통신 사업을 허용했다. 그러나 무역규제 등은 여전히 고수했다.
쿠바 정부가 같은 해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간첩 혐의로 체포하면서 양국의 긴장은 고조됐다. 그로스는 미 국무부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하도급업체 직원 신분으로 지난 2009년 현지 유대인 단체에 인터넷 장비를 설치하려다 체포됐다. 쿠바 법원은 2011년 그로스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징역 15년 형을 선고했다.
양측은 지난 1년여간 그로스의 석방을 위해 협상을 벌였으며,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회장이 전화통화를 갖고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로스는 이날 석방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번 국교 정상화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쿠바에 대한 봉쇄에 따라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쿠바는 1962년부터 이어진 고강도의 금수조치로 경제 상황이 악화일로였다.
특히 최근 국제유가의 폭락으로 쿠바의 대표적인 우방인 러시아와 베네수엘라가 경제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도 양국의 국교 정상황에 영향을 미쳤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 쿠바의 국내총생산(GDP)은 680억 달러 정도로, 미국이 하루 반 동안 생산하는 규모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국교 정상화가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로 이어질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 적성국이었던 쿠바와 관계 회복을 모색하면서 북한을 비롯한 나머지 적성국에 대해서도 외교정책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이번 국교 정상화가 미국의 대북 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두고봐야 한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신중론자들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북한의 고립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