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장’에서 ‘미생’까지, 2014년 우리를 관통한 것들[배국남의 직격탄]

입력 2014-12-1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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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명량' '미생' 포스터(CJ엔터테인먼트, tvN)

2014 갑오년 새해 벽두부터“경장(更張)”이라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렸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정치권 인사까지“경장”을 외쳤다.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조여 명징한 소리가 나게 하듯 2014 갑오년에는 한국사회의 비리와 적폐, 정부의 무능,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구태 등을 경장 하자고. 그래서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 행복을 주자고. 부산외대 신입생 등 10명이 2월 17일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사고로 사망하는 것부터 선임병에게 맞아 죽은 윤 일병 사건까지 사건사고 공화국으로 전락한 2014년 대한민국을 보며 경장을 외쳤던 분들에게 한 개그맨의 유행어로 한마디 해주고 싶다. “참 의미 없다!”

4월 16일, 우리는 눈앞에서 단원고생 등 295명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되는 대참사의 비극을 지켜봐야 했다. 기업가의 탐욕과 정부와 정치 지도자의 무능이 합작해 수많은 학생과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월호 대참사.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세월호 참사를 보며 ‘분노하라’저자 스테판 에셀처럼 말하고 싶다. 수많은 사람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정의가 불의에 무릎 꿇고 부패와 비리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판을 쳐 국민이 절망과 고통으로 살고 있기에 무능한 정부와 지도자, 그리고 탐욕의 기업가에 분노하라고!

7~8월 수많은 사람이 극장으로 향했다. 1700만명의 관객이 한 영화를 봤다.‘명량’이다. 국가나 사회, 국민보다는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하고 자리보전만을 위해 전전긍긍한 지도층 인사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절망했다. 진정한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명량’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영화의 한 대사를 되뇌고 싶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

8월 14일부터 4박 5일 동안 세월호 참사 유가족, 쌍용자동차 노동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장애인과 노숙자 등 고통받거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한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전해졌다. 국민의 시선이 일제히 그 손길로 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이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곳에 머물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 내려와 가난한 자를 어루만지고 소외된 자의 발을 씻기고 사회적 약자를 두 팔로 안는 삶을 행동으로, 일상으로 옮기는 교황이기에 신자뿐만 아니라 비신자들도 열광했다. 교황이 강조했던 것을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 “강자가 정의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과 불의에 저항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좀 더 정의롭고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9월 19일 열린‘1% 대 99% 대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의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격론이 펼쳐졌다. 격론을 촉발하고 우리사회에‘21세기 자본’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은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다. 2월 발생한 서울 송파구 박모씨 등 세모녀 자살은 무한질주 하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사회안전망 부실이 낳은 사회적 타살 사건이었다. 20%의 부와 행복을 위해 나머지 80%의 빈곤과 비참을 강제하는 ‘20대 80 사회’, 아니 ‘1%의 탐욕 그리고 99%의 분노’로 대변되는 1대 99의 대한민국 양극화가 피케티 신드롬을 만들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관심을 기울이자고 소리치고 싶다. “자본이 돈 버는 속도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를 앞질러 양극화와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할 수밖에 없고 그 해결책중 하나는 상위 계층에 대한 강력한 증세”라는 피케티 교수 주장을.

12월 5일 미국 JFK공항에서 땅콩 서비스 문제로 비행기를 회항시켜 사무장을 내리게 한 전대미문의‘땅콩리턴’사건이 벌어졌다. 사건의 주역,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슈퍼 갑질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갑(甲)질의 횡행에 대한 반작용은 ‘미생’신드롬을 일으켰다. 종합상사 비정규직 사원을 중심으로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윤태호 작가의 ‘미생’ 웹툰 조회건수 11억 건, 만화 200만부 판매, 드라마 시청률 6%대다. 대단한 열기다.‘미생’신드롬은 전쟁터인 직장에서 생존해야하는 직장인, 자영업자, 취업준비생, 아르바이트생 등 미생들의 고달픈 삶에 대한 헌사이자 미생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의 의미가 있다는 위안이다. ‘미생’대사로 이 땅의 미생들을 격려하고 싶다.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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