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아하!] ‘정글만리’ 중국을 만만하게 보면

입력 2014-11-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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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논설실장

“한국의 제조업들은 서로 앞다퉈 중국의 싼 인건비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황금의 바다가 아니라 익사의 바다였다. 왜냐하면 중국은 단순 기술을 재빨리 습득해서 역공의 인해전술을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정래 작가는 지난해 출간한 베스트셀러 ‘정글만리’에서 이렇게 썼다. 정글만리는 중국시장을 뜻한다. 인구 13억명에 5000조원에 달하는 내수를 가진 거대 시장에서 벌어지는 세계 경제전쟁은 ‘만 리에 걸쳐 펼쳐진 잔혹한 정글’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11일 타결된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산업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단비가 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중국이 지척의 거리에 있는 우리의 최대 수출ㆍ수입국이자 급부상하는 경제대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요국 중 유일하게 미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3대 경제권과 모두 FTA를 체결한 터라 FTA 허브 역할까지 예상된다.

조정래 작가도 중국을 소설의 배경으로 잡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은 곧 제2의 경제 부흥기를 맞을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중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한ㆍ중 FTA 타결은 ‘중국 활용’을 위한 출발점일 뿐 중국시장이 손쉽게 확대되는 마술 방망이가 결코 아니란 점이다. 오히려 중국 내수시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면 산토끼(중국시장)를 잡으려다 집토끼(한국시장)만 내주는 중국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소비재 비중이 낮은 데다 중국 기업의 기술력이 턱밑까지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장밋빛 낙관론으로 흐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정부는 한 국책연구소가 10년 전에 내놓은 낡은 자료를 토대로 경제효과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또 ‘한국의 경제영토가 세계 3위가 됐다고 홍보에 열을 내고 있다. 멕시코, 코스타리카를 제치고 1위 칠레, 2위 페루에 이어 세 번째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중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존재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 후 단 9년 만인 2010년 42년간 자리를 지켜온 일본을 2위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 사이 한국 기업만 ‘익사’한 것은 아니다. 중국에 진출했던 수많은 글로벌 기업까지 떨어져 나갔다. 중국 기업을 감싸는 중국 정부의 보호주의 ‘갑질’과 외국의 기술을 흡수해 훌쩍 경쟁력을 키운 중국기업의 ‘을의 반란’이란 이중고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최근 성장세가 둔화되기는 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블랙홀처럼 세계 자본과 첨단 기술,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중국 시장을 노리듯 중국도 한국 시장을 벼르고 있다. 당장 600억 달러(약 63조원)에 달하는 한국과의 무역적자를 줄이려 할 것이다. 그만큼 중국산 제품의 한국시장 융단폭격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기술격차도 최근 수년간 많이 줄었다. 이 바람에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는 중국산 샤오미에 발목을 잡혔고, 포스코는 중국산 중저가 철강 제품 공세에 숨을 몰아쉬고 있다. IT, 조선, 철강뿐 아니라 석유화학, 태양광, LED 등 대부분 산업에서 중국의 공세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는데 가격만 비싸다면 한국 소비자들이 국산제품을 외면할 것이다. 한국판 샤오미 쇼크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가격 경쟁력에 기술력까지 추가 탑재한 중국의 파상공세와 엔저로 기술력에 가격 경쟁력까지 새로 장착한 일본의 역공이란 십자포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모레퍼시픽은 고기능 고가 한방 화장품인 ‘설화수’를 앞세워 중국에서 대약진하며 해방 이후 만성 적자이던 화장품 수출입을 단번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쿠쿠전자도 안남미에 특화된 고급 밥솥까지 내는 등 현지화 전략으로 대륙을 휩쓸고 있다. 기술력에 현지인을 배려한 한류 콘텐츠를 접목해 광맥을 캔 경우다.

장밋빛 전망에 취해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허황한 진단에 취하면 빗나간 처방을 내놓기 마련이다. 한ㆍ중 FTA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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