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명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
토종 은행원 출신으로 금융감독원 여성 임원이 된 오순명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별명이 ‘탱크’, ‘오다르크’다.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 얻은 별명이다.
지난 3일은 오 처장이 금융감독원에 부임한 지 1년 6개월 되는 날이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오 처장은 “유일한 여성 임원보다는 일 잘하는 임원으로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는 끼니를 거를 정도로 매우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남자는 반장, 여자는 부반장’의 통념을 깨고 오 처장은 반장을 도맡아 했다. 그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남자들과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을 정도로 강인한 면모를 갖고 있었다.
졸업앨범에 사진과 함께 평소 본인이 좋아하는 문구를 하나씩 써 넣었는데 오 처장은 ‘모든 것아 멈춰라! 내가 클 때까지!’라고 적었다. 그의 당찬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1978년 상업은행 여성 대졸공채 1기로 입사해 남성 중심 사회인 금융권에서 35년간 현장을 누빈 오 처장은 광장동, 압구정동, 연희동 지점장을 지냈다. 강서양천과 인천영업본부장도 역임했다. 지점장과 지역본부장 시절 전국에서 1등 영업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은행에 처음 입사했을 때 남녀 간 승진과 급여체계가 모두 달랐던 당시 그는 남자 직원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때 자신이 뛰어나지 않으면 여성에게 몇 개 주어지지 않은 문이 하나 더 닫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 처장은 “남들과 가는 길이 다르다고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자기 격려를 했다”면서 “나 자신에게 남들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행원 시절 점심시간에 절대 사적인 전화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다.
오 처장은 “힘들다고 포기해 버리면 앞으로 나에게 어려운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나 자신을 격려하며 버텼다”고 토로했다.
그런 오 처장에게 가장 큰 숙제는 역시 육아였다. 아이를 떼어놓고 나와서 일하는 게 과연 최선인지 고민도 많이 하고 고비도 여러 번 찾아왔다. 그는 아이 셋을 키우는 어머니로 하루하루가 투쟁의 연속이었다.
오순명 처장은 기자에게 가장 아끼는 책이라며 낡은 책 한 권을 보여주었다. 포춘지 선정 ‘세계 최고의 여성 CEO 1위’ 자리에 6년 연속 올랐던 칼리 피오리나가 쓴 ‘힘든 선택들’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이었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역경을 딛게 해 준 것이 이 책일 정도로 그에게 무척 각별했다. 인간관계나 부하 직원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성 후배들에게 꼭 권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걸 증명하듯 책 여기저기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오 처장은 이 책을 통해 여자로서 가야 할 길이 ‘포기’가 아님을 배웠다고 했다.
휴렛팩커드(HP) 63년 역사상 최초의 외부출신 CEO가 된 칼리 피오리나와 오순명 처장이 살아온 삶은 닮은 부분이 많아 보였다.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것과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 리더십도 공통점이다. 칼리 피오리나가 5년 만에 HP에서 해고됐던 것과 오 처장이 부행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던 것도 유사하다.
칼리 피오리나는 여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파트너 기업 직원 앞에서 발표할 때, 정장바지 주머니 속에 남편 양말을 뭉쳐 넣고 남자의 물건(?)처럼 보이게 해 상대의 편견을 깨뜨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오 처장도 남자 직원들과 함께 보신탕을 먹고, 남자 직원 30여명과 술집에 가서 함께 어울리는 등 남성과 다르다는 것이 ‘핸디캡’이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지금의 오 처장을 있게 한 것은 여성 후배들의 롤모델이 돼야겠다는 책임감이다. 오 처장에게 여성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여성들이 역사적 소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지금의 세상은 과거 어떤 이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서 “내가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래의 딸들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일념으로 꿈을 크게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